경제·금융 정책

[위기의 국가재정] <중> 안갯속 재정수입

고무줄 세수 잣대·현실성 떨어지는 살림계획이 불안 키운다<br>양성화 한다는 지하경제 규모 통계분석 방법따라 천차만별<br>FIU 금융거래자료 공유 등 관련 입법안도 제자리걸음<br>기존 세수확충 계획 불발 땐 서민·기업 쥐어짜기 가능성


'납세자의 날' 기념정책토론회가 열렸던 지난 3월5일. 세정당국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조세연구원은 이날 부가가치세 탈루 등을 막기 위해 이른바 '매입자세액공제제도'를 점진적으로 전면 도입하자는 제언을 공개했다. 현재 부가가치세는 물품 판매자가 매입자(예컨대 소비자)로부터 거둬서 세정당국에 대신 납부해온 방식인데 이를 매입자가 직접 내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들은 "수년 전에 학계로부터 현실성 없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내용인데 (조세연이) 새 정부 들어 새삼스레 꺼내 드는 저의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매입자세액공제제도 전면 도입은 흐지부지됐고, 대신 일부 업종(동스크랩 등)에만 제한적으로 추가 적용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사업 재원마련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의 뒷모습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134조8,000억원에 달하는 공약이행 비용 중 27조2,000억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로 마련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지만 이를 현실의 정책으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많은 입법안 등이 후퇴하거나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중 핵심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보유한 금융거래자료를 국세청이 전면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인데 국회 입법과정에서 국세청이 FIU의 일부 자료만 제한적으로 공유하는 내용으로 쪼그라들었다.

지하경제란 정부의 공식통계로 파악되지 않는 경제활동을 뜻한다. 지하경제가 커지면 세금을 걷기 어려워진다. 정부는 5월 말 발표한 '공약가계부'를 통해 "조세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는 2008년 17.1%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도 우리나라의 명목GDP가 1,026조4,520억원었으므로 그중 약 176조원을 지하경제 규모라고 소개한 셈이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인용한 조세연의 보고서는 지하경제 규모를 이렇게 확정하지 않았다. 조세연은 해당 보고서를 통해 지하경제 규모는 측정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임을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지하경제 규모에 대해 ▦지출ㆍ소비 분석 방식 적용시 GDP의 2.3~3.1%(22조~29조원) ▦산업연관표 분석 방식 적용시 부가가치세 탈루율 5.6%(2조3,000억원) ▦복수지표-복수원인(DYMIMIC)모형 적용시 GDP의 17.1% ▦화폐수량방정식 적용시 GDP의 18.6~18.9%로 다양하게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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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는 이 가운데 편의상 비교적 지하경제 규모가 큰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지하경제 규모가 크면 그만큼 추가로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하경제 규모가 GDP의 2.3~3.1% 수준이라면 현실적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로 거둘 수 있는 세수는 수십조원은커녕 최대 수조원대에 불과하다. 지하경제에서 27조원대의 세금을 거두겠다는 포부는 이처럼 지하경제를 바라보는 고무줄 잣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셈이다.

정부의 세수확충 불확실성은 지하경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세수확충 방안들도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을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벌써 정부가 내년도 세법개정안으로 추진하기로 했던 비과세ㆍ감면 축소안 중 일부는 국회에 제출되기도 전에 후퇴됐다. 소득세의 경우 중산층 일부에까지 세부담을 높이려던 방안이 무산됐다. 또한 음식점 등에 대한 매입세액공제율 축소 방침도 자영업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히자 정부는 기존 방침보다 한발 물러선 수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가 비과세ㆍ감면 정비를 통해 5년간 마련하겠다는 돈이 18조원인데 첫발도 떼기 전에 관련 법안들이 후퇴하는 상황이니 당초 계획을 실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또 다른 세수확충 방안인 금융소득과세 강화는 그나마 전망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세금은 5년간 2조9,000억원에 불과해 134조원대의 공약비용을 대기에는 조족지혈 수준이다.

이처럼 전망이 불확실한 세수확충 계획을 통해 총 48조원에 달하는 세금을 짜내겠다는 정부의 재정전략은 거의 모험 수준이라는 게 재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직접적인 증세를 하지 않고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공약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지하경제 양성화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더라도 그 세금이 어디서 나오느냐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정부 자문기구인 국가재정정책자문위원회 소속의 한 학자는 "고소득층일수록 (세무사, 금융 전문가 등의 컨설팅을 받아) 탈세수법이 고도화돼 있고 조세저항이 크기 때문에 지하경제 양성화에 따르는 행정비용도 그만큼 많이 든다"며 "반면 서민은 상대적으로 소득탈루 등의 방법이 단순해 세금을 거두기가 쉬워 자칫 세정당국은 행정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민들을 쥐어짜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분석했다. "

정부가 기존의 세수확충 계획이 불발될 경우 이를 대체하기 위해 한층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우려도 산업계 등에서 팽배하다. 즉 국세청 등을 동원해 세무조사 강도를 더 높이거나 소득세ㆍ부가가치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이 작은 법인세를 증세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한 대기업 재무담당 임원은 "이미 소득세 증세는 정부가 (올해의 세법개정안에서 수정안을 내면서) 스스로 포기했고 부가가치세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면 결국 기업에 손을 내미는 수밖에 없을 텐데 야당이 부르짖는 대기업 증세로 가닥이 잡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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