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제왕과 영웅, 책사, 인재들의 인간형과 활약상을 풀어낸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을 ▦관계와 용인의 인간학 ▦어짊과 의리의 인간학 ▦전술과 투쟁의 인간학 ▦술수와 지략의 인간학 ▦인내와 부드러움의 인간학 등으로 구분해 그들이 역사를 만들어낸 원동력들을 들려준다. 군주를 섬기는 일은 흡사 호랑이와 더불어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호랑이와 벗하면 세상에 그 위풍을 드러낼 수 있으나 자칫하면 큰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중국인들은 ‘호랑이와 더불어 춤을 추는 일’로 비유한다고 한다. 매우 심오하고 고상한 처세술이라는 것이다. 한(漢)나라의 진평은 개국과정에서 큰 공헌을 세우지 못했으나 처신을 잘해 이름을 남긴 대표적인 사례다. 유방은 개국 후 영포의 난을 평정했으나 화살을 맞고 큰 상처를 입어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이때 평소 번쾌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 신하가 유방에게 모함을 했다. 유방은 전후 사정을 가리지 않고 진평과 주발을 불러 “빨리 연나라 땅으로 가서 번쾌를 참수하라”고 명했다. 번쾌는 황후인 여후의 매부였고 개국 공신이었지만 두 사람은 유방의 병세가 깊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유을 묻지 못한 채 북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논의했다. “폐하가 지금 누구의 참언을 들었는지 몹시 흥분한 나머지 속히 참수하라고 말했지만 뒤에 후회막급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번쾌를 잡아 참수하지 말고 도성으로 호송해서 폐하의 손으로 직접 처리하게 하자”고 결정한 것. 번쾌를 잡은 진평은 최대한 천천히 압송하고 그 사이에 유방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평은 여후가 두려워 번쾌를 압송하는 일행보다 앞서 먼저 성으로 달려와 여후에게 말했다. 여후는 그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며 진평에게 집에 가서 쉴 것을 명했다. 그러나 진평은 또다른 참언이 있을 것을 염려해 궁중에 남아있을 것을 청했고 여후는 진평이 그렇게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보고 그에게 새 임금을 옹립하는 것을 돕도록 했다. 여성 역사상 가장 큰 권력을 지녔던 측천무후와 자희태후의 정치술, 창업과 수성의 방정식을 알았던 송 태조 조광윤과 명태조 주원장, 반간계에 속아 적벽대전을 망친 조조, 진심 어린 충고를 무시하다 곤욕을 치른 한신 등의 인물들과 사건들도 그려진다. 저자는 “인자하지 않으면서 나라를 얻은 자는 있었지만 인자하지 않으면서 천하를 얻은 자는 여태 본 일이 없다”는 맹자의 말을 빌려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동과 술수를 펴는 것은 경계해야 된다고 지적한다. 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