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탈북 동성애 작가 장영진 인터뷰 "난 이방인 중 이방인이지만 글쓰는 꿈 포기할 수 없었죠"

쓰고싶은 글 못쓰는 어린시절 보내고 동성친구 생각에 고통속의 결혼생활

"사람답게 살자" 자유·사랑 찾아 탈출

남한서 동성애 개념 처음 알게 되고 자전소설 '붉은 넥타이' 내며 창작열

다음 작품은 北여성들 그린 순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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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간 정든 고향, 어머니와 쌍둥이형, 막내 동생. 이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자전적 소설인 '붉은 넥타이'를 최근 펴낸 장영진(56·사진) 작가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꿈이 없는 인생은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탈출은 탈북자들이 통상 말하는 극심한 기아, 정치적 억압 등과 거리가 멀다.


'붉은 넥타이'는 북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부터 탈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면서도 솔직한 심경으로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장 작가는 정치적 신념으로 탈북을 강행한 게 아니기에 책에서 체제와 이념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무엇이 북한을 더 이상 꿈이 없는 곳으로 만든 걸까. 7살의 장영진은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그는 "어렸을 때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저를 보고 어머니가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커서 무엇이 되려고 그러니'라고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수많은 작가들이 북한에서 원하지 않는 글을 써 정치범 수용소로 가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결심했다. '커서 나는 꼭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게 됐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혼 첫날밤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눈 앞에 있는 아내를 두고 동성 친구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감정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살았다.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아내와 결혼한 지 9년이 지났지만, 아내를 향한 감정에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불편하고 미안했다. 이혼을 하는 편이 아내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해 이혼 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영진 작가는 "그때는 몰랐다. 무엇 때문에 결혼생활을 하기 힘든지 그냥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만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북한에는 동성애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장 작가는 당시 본인의 성적 취향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 피어 오르는 자유와 사랑의 본능이 결국 그를 북에서 발길을 돌리게 했다. 그는 성 정체성 때문에 국가와 가족들을 버렸다는 일각의 비판을 잘 알고 있는 듯 가족들 얘기를 꺼낼 때면 탈북한 지 20년이 다 됐지만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장 작가는 "헤어지면 몇 년 간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 생각했다"며 "한번 뿐인 인생 꿈을 찾아가자,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장 작가에게 '붉은 넥타이'는 꿈을 의미한다. 조선소년단에 입당해 두르는 붉은 넥타이는 국가와 당에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징표다. 어렸을 때 장 작가는 붉은 넥타이를 두른 채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고향과 가족을 떠나 사랑과 자유를 꿈꾸고 있다.

그는 "무엇 때문에 부모와 형제를 다 버리고 죽음을 감수하고 남한에 왔을까. 당에 대한 충성심과 사랑과 자유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독자들에게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왜 남한이었을까. 그는 휴전선 인근에서 통신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이로 인해 남한 초소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대남방송 등을 통해 보내오는 남한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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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그는 남한이 북한보다는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방인이 돼 찾은 남한에서 그는 꿈을 찾은 걸까.

장영진 작가는 남한에 와서 동성애란 개념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간 자신의 몸에 병이 있는 게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제는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글에 대한 욕심도 맘껏 낼 수 있게 됐다.

자전적 소설로 꿈을 이룬 그는 벌써 다음 작품을 쓰고 있다. 장 작가는 "문학을 하고 싶어 소설을 썼는데, 자전적 소설이 됐다"며 "두번째 소설로 순수 문학 작품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쌍가메(쌍가마의 북한 사투리)의 다섯 딸들(가제)'이라는 제목의 여성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농촌에 시집온 평범한 북한 여성이 다섯명의 딸을 낳으면서 겪는 모습을 담은 내용이다.

장영진 작가는 "남한에 와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봤다"며 "북한이나 남한이나 여자 인생과 마음은 다 똑같다. 그러나 남한 여자는 북한 문학을 접하지 못해 북한 여자를 잘 모른다. 신경숙 작가가 남한 여성을 그렸다면 나는 북한 여성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장 작가가 순수 문학에 천착하는 이유는 순수문학만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순수문학 속 주인공들을 따라서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체제와 문화 생활상을 다 알 수 있다"며 "북한에 '삐라'를 뿌리는 것보다 문학이 더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장 작가는 북한 군대에는 구타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을 이상한 나라, 무법천지 나라로만 알고 있는데, 국내에 소개된 북한 문학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며 "앞으로도 북한 사람의 인생을 문학으로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소설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시작한 환경미화원 일을 이번달까지만 하고 그만 둘 생각이다. 일을 하면서 좋은 작품을 쓴다는 생각이 양심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아동 소설도 구상 중이다. 그의 머리 속에서 창작의 열정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일종의 부채 의식이 작용한 탓이다.

장 작가는 "'붉은 넥타이'를 쓴 이유가 나 때문에 고생한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며 "끝까지 그들을 위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탈북 이후 남한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크게 배신당한 그였지만, 여전히 그에게 사랑은 버릴 수 없는 꿈이다.

장 작가는 "인생을 살면서 생각한 게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라며 "저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사랑을 만나 사랑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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