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8월13일. 77일간의 옥쇄파업으로 멈춰있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쌍용차의 공동관리인이었던 이유일(사진) 쌍용차 대표는 "과거에 집착해 좌절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직원들은 먼지 쌓인 공장을 정리하며 본업으로 돌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로부터 5년5개월이 지난 2015년 1월13일. '프로젝트명 X100'으로 유명한 쌍용차의 야심작 티볼리가 출시됐다. 이탈리아 휴양도시에서 이름을 따온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는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이 5,210대에 달할 만큼 반응이 뜨겁다.
쌍용차가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하자마자 지난 6년간 '쌍용차 재건'을 위해 일해 온 이 대표는 돌연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벼랑 끝에 섰던 회사를 살려낸 이 대표는 왜 지금 물러날까.
임기를 2주 남겨둔 지난 10일 밤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속내를 털어왔다. 그는 "회사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 숙원을 이루지 못한 채 대표직을 떠나게 돼 너무나 아쉽다"고 했다.
◇못 바꾼 사명과 흑자전환=이 대표는 회사 이름을 바꾸지 못한 것을 후회되는 일 가운데 첫손에 꼽았다. 마힌드라와 '코란도'로 해볼까 논의도 했지만, 실제 추진은 못했다. 이 대표는 "사명을 바꾸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며 "쌍용차는 강성 노조로 유명하고 쌍용그룹과는 이제 관계도 없는데 계속 쌍용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중국에서는 용이 좋지만 서양에서는 괴롭히는 이미지가 더 많다"며 "쌍용차의 차종인 '코란도', 외부용역업체가 추천한 '코리아모터' 등을 두고 고민했지만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흑자전환이다. 이 사장은 "많이 회복됐지만 결국 적자를 못 벗어난 채 물러나게 돼 아쉽다"며 "통상임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러시아만 아니었으면 흑자를 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2009년 2,934억원에 달하던 쌍용차의 영업손실은 2013년 89억원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루블화 가치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지난해 쌍용차의 영업손실은 769억원으로 다시 늘었다.
이 대표가 흑자전환이 아쉬운 것은 옛 직원들 때문이다. 대주주인 마힌드라의 아난드 회장은 "쌍용차가 흑자를 내면 2009년 구조조정 당시 회사를 나간 직원들부터 우선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티볼리'에 사운 건다=그래서 이 대표는 '티볼리'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크다. 그가 대표로 취임한 뒤 나온 첫 신차인데다 'SUV 명가 쌍용차'를 다시 만들어줄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티볼리'에 자신이 있다. 그는 "최근 현대차의 '투싼'이 4,000대가 사전계약 됐다는데 알아보니 '티볼리'의 점유율이 빠지지 않았다"며 "소형 SUV 시장이 더 커질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실제 총 25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쌍용차 평택공장은 '티볼리' 흥행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현재 1~3 라인에서 생산하는 물량은 15만대 수준까지 늘었다.
국내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티볼리'의 다음 목표는 유럽이다. '티볼리'는 6월께 유럽 시장에 출시된다. 올해 쌍용차의 유럽 판매 목표량 1만7,000대 가운데 1만대가 '티볼리' 몫이다. 또 6월에는 디젤을, 연말에는 차체가 긴 모델도 추가로 내놓는다. 이 대표는 최종식 사장이 대표로 정식 취임하면 고문으로 물러나 쌍용차에 대한 조언을 계속 할 생각이다.
이 대표가 남긴 과제도 있다. 업계에서는 '티볼리'가 이익이 많이 남는 차종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수익성이 좋은 중형과 대형차 부문에서 새로운 신차가 계속 나와야 한다. 해외영업도 더 강화해야 한다. 쌍용차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24일 주주총회에서 선임될 최종식 사장은 해외 영업통인 만큼 중국과 미국시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