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2월 3일] <1611> 종이마패


'포항종합제철이 일본 기술협력회사와 협의하여 기계제작 및 공급업자를 수의대로 선정 가능하도록 한다.' 포스코의 포항 종합홍보관에 보관된 빛 바랜 문서의 내용 가운데 일부다. 문서의 나머지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요컨대 포철이 구매의 전권을 행사한다는 취지의 문서는 제목도 표지도 없지만 '종이마패'로 불린다. 왜 마패인가. 조선시대 암행어사 마패처럼 막강한 '권한'을 지녔기 때문이다. 박태준 포철 사장이 메모지에 적은 문서의 왼쪽 상단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1970년 2월3일'이라는 날짜 표기와 함께 명시돼 있다. 종이마패는 박 포스코 명예회장의 자서전에도 나온다. 건물을 짓고 제철설비를 들여오는 상황에서 온갖 압력과 청탁이 들어왔단다. 시달리던 박 당시 사장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건의서를 올리고 이튿날 서명을 받아냈다. 절대권력자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종이마패는 초기의 포철을 외부 압력과 청탁에서 보호해줬다. 커미션을 노리고 설비구매에 끼어들려던 여권의 실세도 종이마패 앞에서는 뜻을 접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이마패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과 포스코 성장신화를 설명하는 상징물로 종종 회자된다.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종이마패는 부정과 부패, 독재시대의 상징물이라는 해석이다. 절대권력자가 관심을 보여야만 '떡고물'을 노리는 세력이 움츠러들었다는 사실은 깨끗하지 못한 차관ㆍ설비도입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차관ㆍ지하철 도입에 거액의 정치자금이 제공됐다는 미국 중앙정보부(CIA)와 일본 의회의 보고서도 있다. 과연 어떤 해석이 맞을까. 쉽게 판단되지 않지만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 종이마패가 보다 많았다면 우리는 세계 수준의 초우량 기업을 몇 개쯤 더 갖게 됐을지도 모른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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