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생활 속 경제] 전문직 면허제

특정 집단 울타리 역할 "경쟁 저해"<br>직종 종사자 이득 도모… 소비자 이익은 오히려 줄어<br>전문대학원 설립·정원 자율화등 진입장벽 완화 필요


조선 선조 때 명의로 이름을 날렸던 허준은 의사 면허증이 있었나. 중국의 화타와 편작은 의사 면허증을 가지고 환자를 돌봤나. 내년에 문을 열게 되는 법학전문대학원의 입학정원을 둘러싼 논란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병원이나 치과에 가면 출신학교 졸업장, 의사 면허증, 전문의 인증서 등 매우 많은 증명서가 붙어 있다. 약국에 가도 약사 면허증이 붙어 있다. 변호사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공인회계사는 인증서를 소지하고 있다. 이렇듯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증서나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면허증이나 인증서는 왜 필요할까. 이들 면허증과 인증서가 하는 기능은 무엇일까. 어떤 직종에 종사할 수 있는 자격을 통제하는 방법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등록제(registration)다. 등록제의 필요성으로는 범죄 수사와 같은 목적에 도움이 되며 세금을 용이하게 거둘 수 있고 소비자들을 사기나 협잡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 둘째, 인증제(certification)다. 이는 직업 종사자가 특정 기술이나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인증서가 없다고 해서 직업에 종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 인증의 대표적 예로서는 공인회계사와 전문의를 들 수 있다. 셋째, 면허제(licensure)다. 일정 조건을 충족해 면허를 가진 사람만이 특정 직종에 종사할 수 있다. 의사 면허, 변호사 자격증을 들 수 있다. 인증제와는 달리 면허나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그 직종에 종사할 수 없다. 이제 면허제와 인증제에 대해 알아보자. 의료 서비스는 생산자가 공급하는 서비스의 품질 수준을 소비자가 경험하기 전에는 잘 알 수 없거나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잘 알 수 없는 신뢰재(信賴財) 또는 경험재(經驗財)이다. 이런 경우에 정부가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면허를 교부하고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사와 환자 간에 존재할 수 있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면허제가 도입된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의사는 자신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의 품질 수준을 잘 알지만 환자들은 그런 정보를 잘 모르는 현상을 말한다. 누구나 의료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돌팔이 의사’들이 판을 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지난 1873년 텍사스주에서 의사 면허제가 처음 도입됐고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면허제 도입 이후 그로 인해 의료 서비스의 품질 수준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소득증가와 함께 청결의식이 높아지고 첨단 의료기기가 발달해 인간의 수명이 크게 연장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냉장고의 보급은 소화기 계통의 질병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다. 반면에 의사 면허제는 의료산업에 종사하려는 의사의 수를 제한하는 울타리(진입장벽)가 되고 이는 곧 의과대학의 신ㆍ증설을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의사 면허제는 의료산업 내의 경쟁을 제한해 경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소비자 이득을 박탈한다. 또한 의료 서비스는 건강과 생명에 관한 것이므로 그 수요가 의료수가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이런 경우 면허제로 공급이 제한되면 수가가 올라가 의사들의 총수입은 증가한다. 최근 법학전문대학원의 정원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도 사실은 법조인 공급과 관련된 진입장벽이다. 표면적 명분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자격을 가진 법조인을 적절히 공급한다는 것이지만 이 역시 법조계 종사자의 수를 통제해 그들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인증제는 면허제와는 달리 인증서가 없더라도 그 직종에 종사할 수 있어 면허제보다 그 강도가 약하지만 이 역시 특정 집단에 대한 울타리 역할을 하는 진입장벽이 돼 공급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공급자 간의 경쟁이 낳을 낮은 가격과 높은 서비스 수준이라는 소비자 이익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 사회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의사나 변호사, 그리고 공인회계사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잘 알 수 없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시장 조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최적점을 향해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이런 직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인식하도록 훈련돼왔기 때문이다. 진입장벽을 낮추는 차선의 방법은 현행 면허제나 인증제를 유지하더라도 대학의 입학 정원을 제한하지 말고 자격시험에서도 아주 실력이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합격해 종사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완화하는 것이다. 물론 인증제와 면허제의 특성상 이런 방법의 진입장벽 완화 방안이 효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의학전문대학원ㆍ법학전문대학원의 설립과 정원을 완전 자율화한다면 소기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면허제와 인증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입장벽이 돼 산업 내의 경쟁을 억제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용어해설 ◇면허제=일정 조건을 만족해 면허를 가진 사람만이 특정 직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의사면허와 변호사 자격증이 대표적인 것이다. ◇인증제=어떤 직업 종사자가 특정 기술이나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제도. 인증서가 없어도 직종에 종사할 수는 있다. 전문의와 공인회계사가 대표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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