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속보에 공채달력까지 선봬… 취업사이트 새 모델 만들며 폭풍 성장
하루 평균 방문자수 32개월 연속 1위… 조선소·증권사 등서 사회생활 큰 도움
직원들 첫 성과급 줬을때 가장 기뻤죠
대학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김구직(가명)씨는 오늘도 취업 사이트를 찾아 '공채달력'을 보고 서류접수 마감이 임박한 회사가 어디인지 확인한다. 연봉도 많이 주고 탄탄한 직장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人之常情). 이 때문에 큰 회사들을 모아놓은 '1,000대 기업 공채속보'에도 꼭 들러 새 채용공고를 살핀다. 모집공고 끝에 나와 있는 인사담당자와의 질의응답은 반드시 챙겨야 할 아이템이다.
우리나라 취업준비생들의 일상이다. 어떤 취업포털을 방문하더라도 이런 서비스가 공통으로 제공된다. 구직자들은 무수한 채용정보를 일일이 들여다보는 수고스러움을 덜고 원하는 소식에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좋아한다. 지금이야 너무도 당연한 기능들이지만 모두 취업포털 '사람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면서 온라인 취업 사이트가 본격 등장한 지난 2000년 전후만 해도 취업포털의 주된 기능은 단순히 기업들로부터 구인광고를 받아 게시하는 데 그치는 수준이었다.
이때 한참 후발주자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인HR(이하 사람인)는 적극적으로 구직자와 구인기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았다. 2006년 9월 업계 최초로 1,000대 기업 공채속보를 제공했고 2007년 5월에는 공채달력을 선보이면서 업계에 '취업포털이란 이런 것'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 중심에는 2005년부터 10년째 사람인을 이끌어온 이정근(52·사진) 대표가 있다. 그는 "우리 일의 본질은 구인자와 구직자를 연결하는 것"이라며 "구직자가 원하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고 필요한 정보를 쉽게 살펴보고 싶어한다는 점에 착안해 업계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인이 내건 비전은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망받는 착한 기업'이다. 이 대표는 "매출 얼마를 달성하겠다, 업계 1위가 되겠다 같은 흔한 문구 대신 국민에게 사랑과 신망을 받는다는 큰 꿈을 세웠다"며 "좀 더 나은 구인·구직 연계(매칭) 서비스를 개발해 국민들의 취업을 도움으로써 비전에 한발 더 다가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를 만나기 위해 16일 오전 서울 구로구 디지털단지에 있는 사람인 본사를 찾아갔을 때 취재진을 가장 먼저 반겨준 건 환하게 웃고 있는 직원들이었다. 출입문을 지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saramin'이라는 영문 이름판은 직원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꾸며져 있었다. 이 대표는 '보기 좋냐'고 물은 뒤 "'사람'이라는 말이 들어간 회사 이름답게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비단 회사 이름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인은 구인·구직시장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업무의 특성에다 회사 구성원들의 아이디어와 영업·마케팅 능력으로 기업의 성패가 판가름나는 정보 서비스 업종이다 보니 사람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비전 수립부터 경영 전반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제일의 가치로 삼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를 높이고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대표이사와 직원 간 고정적인 만남의 시간을 갖고 직원 간에는 다른 부서 사람들과 주1회 점심을 함께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3년 전부터 캠핑을 즐기기 시작한 이 대표는 올해부터 자주 만나지 못한 직원들과 함께하는 캠핑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자연 속에서 회사 이야기가 아닌 살아가는 정을 나눈다면 관계도 깊어지고 돈독해지면서 소통이 더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첫 직장은 조선소였다. 현재 대표로 있는 구인·구직기업과는 무관하지만 그의 대학 전공(조선공학)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후 해군장교로 군대에 다녀온 뒤 다시 조선소를 찾았지만 마침 업황이 나빠지며 현대자동차에 들어갔고 12년에 걸쳐 엔진 품질관리와 영업소·고객센터 등을 거쳤다.
현대차 고객관리 부문에서 오랜 기간 일한 경험을 살려 2000년 당시 새로 생긴 키움증권으로 옮긴 이 대표는 고객 콜센터 구축작업, 마케팅팀 등을 맡아오다 2005년 계열사인 사람인 대표로 취임했다.
이 대표는 "3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28명의 상사와 함께 일했고 유난히 여러 업종과 부서를 넘나들며 무수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며 "매번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이것이 나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돌이켰다.
그가 과거 경험을 통해 터득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양(量)이 선행되지 않은 질(質)은 없다'는 것. 남들과 차별성을 가지는 역량과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대표는 "한동안 '월화수목금금금'의 시간을 보냈다"며 "최근에는 약간 여유가 생겼지만 한주의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을 때는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일을 처리하고 가볍게 새로운 주를 시작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근면한 성격과 다양한 현장경력은 지금의 사람인과 이 대표를 키운 원동력이 됐다.
사람인 사장이 된 2005년, 이 대표는 회사의 인사이동에 따른 계열사 직원 신분이었지만 사실상 그가 맡은 역할은 막 창업한 벤처기업가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사람인 직원은 20명 남짓이었고 앞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경쟁 취업 사이트들의 틈바구니에서 적은 자본과 인력만을 무기로 살아남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이 대표는 "항상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투자에 집중할지, 당장 매출증가에 신경을 써야 할지, 직원 복지부터 챙겨야 할지를 순간순간 고민했다"며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영여건에서 한쪽으로 치우치면 줄에서 떨어지는(시장에서 실패하는) 험난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일이 너무 힘들 때면 옥상에 올라가 불교 경전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외우며 자신을 다독였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원칙에 따라 차근차근 고객의 요구에 맞춘 서비스를 만들어가며 시장 내 경쟁력을 높인 사람인은 2009년 첫 흑자전환을 달성했고 그해 추석 즈음 직원들에게 최초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 대표는 "한명당 50만원 정도로 많지는 않았지만 상징적인 의미의 성과급이었는데 지금까지 대표 생활을 하며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인사담당자의 질의응답을 제공하는 '인사통(2009년 5월 개시)' '모바일 서비스(2010년 7월)' 등 구직자 중심의 서비스를 연거푸 내놓은 사람인은 현재 취업포털 중 월간 하루 평균 방문자 수 32개월 연속 1위(코리안클릭 기준) 기록을 이어온 업계의 강자로 성장했고 2012년에는 증시에 상장하며 회사의 몸집을 키웠다.
사람인은 구직자들이 최적의 회사를 찾을 수 있도록 지금까지 축적해온 채용 관련 빅데이터를 토대로 매칭(구인·구직 연결)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매칭연구소를 만들었고 정보기술(IT), 알고리즘(문제해결 절차와 방법) 전문가도 영입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취업난과 구인난을 동시에 해결해 미스매칭을 줄일 것"이라며 "계속 업계에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제시하는 리딩컴퍼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여러 회사에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커지는 것과 관련해 수많은 인적정보를 다루는 사람인 역시 보안강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대표의 최근 관심사는 3D프린터다. 그는 "시대를 변화시키는 주요한 축 가운데 하나"라며 "최고경영자(CEO)는 흐름을 짚어야 하고 변화가 빠른 IT 분야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관련 정보를 챙기면서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우리 사업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등을 고민해본다"고 덧붙였다.
직원 수 20여명의 조그마한 인터넷 기업을 10년 만에 연 매출액 500억원대, 직원 500명이 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취업포털로 키운 이 대표는 성공한 벤처기업가로서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팔릴 것으로 생각하고 무작정 뛰어들지만 그래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팔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성장시킨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 이정근 대표는 |
멘토링부터 희망벽화 그리기까지… 사내 봉사단 '아람인' 왕성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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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d.co.kr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