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40조시장 놓고 은행·증권사 충돌 조짐



은행 “예금상품 우리 것인데…” 전격 판매중단 선언 증권사들 “고객 대규모 이탈 우려…유예기간 달라” 은행과 증권사들이 4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정면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이 그동안 증권사에 공급하던 퇴직연금 정기예금 판매를 중단하자 증권사들은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 상품 운용에 차질을 초래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각 은행들은 12월1일부터 퇴직연금 감독규정 개정안이 시행되는 만큼 제도 변경에 따라 기존 업무계약을 중단하고 상품공급을 원하는 증권사들과 신업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퇴직연금 유치전이 본격화되는 연말을 앞두고 일방적인 상품 공급 중단을 결정한 것은 은행권이 증권사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하고 있다. 10월말 현재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전체 퇴직연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1.8%, 확정급여형(DB)내에서는 무려 97.3%다. 증권사들은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이 월등히 높은 DB형에 은행 예금 편입을 못 하게 될 경우 연 이율 5% 안팎에 달하는 역마진 구조의 원리금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만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해야 할 실정이다. 현재 각 증권사의 DB형 원리금보장형 상품 내 은행 예금 비중은 20% 안팎이다. 문제의 발단은 금융위원회가 지난 10월 퇴직연금 감독규정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감독 당국은 각 사별 자사 상품 편입 비율을 12월1일부터 70% 이하로 낮추기로 하고 타사 상품을 자유롭게 편입할 수 있도록 금감원과 업계가 공동으로 전산 허브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각 증권사들은 기업은행, 우리은행 등 개별 은행과 연계된 전산 인프라(인터페이스)를 통해 퇴직연금 가입자 계좌에 각 은행 예금 상품을 편입시켰다. 하지만 12월1일부터 금융감독원이 개발한 ‘퇴직연금사업자간 상품교환 허브시스템(이하 공동망)’이 가동되면서 은행들은 공동망 사용을 위한 전산 시스템이 개발되기 전까지 신규가입을 전면 중단하고 만기 재이체(예금 만기 후 재가입)에 한해 1개월간 한시적 가입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금감원이 구축한 전산허브는 12월1일부터 가동을 시작하지만 개별 회사의 전산 인프라 작업이 미흡해 예금상품 공급이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그동안 은행권이 자사 가입자와 증권 등의 가입자에 차별적인 금리를 제공하다가 12월1일부터 타사 가입자에 차별적인 금리를 제공하는 행위가 전면 금지되면서 대규모 역마진 사태를 우려해 상품 제공을 중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A은행은 자사 퇴직연금 가입자들에게 4%대 후반의 예금 금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B증권사에 제공하는 예금 금리는 3%대 초반 수준이다. 한 대형 증권사 퇴직연금 담당자는 “우리은행이나 기업은행이 굳이 타사업권 가입자에게 역마진 구조의 고금리 예금을 제공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며 “자사 가입자에게만 고금리를 제공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 상품에 5%에 육박하는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역마진 구조의 ELS 판매 비중을 늘려 원리금보장형을 운용할 경우 대규모 손실 가능성도 높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퇴직연금 시장 초기 가입자 유치를 위해 5% 안팎의 금리를 제시했는데 앞으로 은행권 예금 공급이 중단될 경우 원리금 보장형 ELS만으로 상품을 운용하게 돼 손실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고금리 이율을 제시하고 꺾기 등으로 손실을 만회하는 은행권이 퇴직연금 시장 독식에 나설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각 증권사들은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도 금융감독원이 뒷짐을 지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은행 예금 없이 원리금 보장형 ELS만으로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운용해야 한다면 고객들을 일일이 만나 상품운용 변경 사실을 통지해야 하고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시간 여유가 없다”며 “금감원이 유예기간을 둘 수 있도록 중재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ㆍ증권ㆍ보험 등 모든 업권이 다양한 자사 상품을 내놓고 필요한 상품을 골라 쓰도록 하는 것이 공동망 구축의 당초 취지고 은행의 예금상품을 공급받고자 하는 증권사라면 신업무계약을 체결하면 되는 것”이라며 “증권사들이 자체 전산 개발을 게을리해놓고 은행들이 상품 공급을 중단했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은행들이 일방적으로 상품 공급 중단을 통보한 것이 아니고 투자자들 피해를 우려해 한 달간 유예기간을 줬다”며 “내달 중순이나 1월초까지 개별 회사들이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면 그때부터 원활하게 자사 상품을 내놓고 골라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의 예금 공급이 전면 중단되거나 장기화될 경우 증권사 퇴직연금 상품에 가입했던 안전투자 성향의 가입자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증권사가 판매하는 원리금 보장형 ELS는 예금자보호 장치가 없어 투자자들의 이탈이 많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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