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ㆍ11 총선 결과 새누리당이 제1당이 됐다. 여당이 다수당이 된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다행스런 일이다. 야당이 다수당이 됐다면 온갖 복지공약을 국민이 승인해준 것으로 받아들여 무책임한 '무상복지'가 더욱 기승을 부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좀 숨을 고른 다음 대선에서 다시 복지를 둘러싸고 제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차제에 우리나라 복지에 관해 차분히 돌아보고 국민적 공감대를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복지에 관한 보수진영의 관점과 진보진영의 관점이 서로 지나치게 편향돼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
보수진영은 일련의 무상복지가 나라를 남유럽 같이 거덜낼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은 1인당 소득 2만달러 시절의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 엄연한 사실로부터 두 가지를 끌어낼 수 있다.
사회안전망 강화 위해 증세 불가피
하나는 앞서간 선진국의 발전단계와 비교할 때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복지수요가 크게 분출할 만도 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단기에 사회복지 지출을 더 높일 수 있는 여력이 우리 경제에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인정하지 않고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비춰볼 때 현재 상태로도 장기적으로 선진국보다 사회복지 지출비중이 더 높아진다"고 열심히 설교해봐야 설득력이 없다. 장기를 내세워 단기에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정치인과 서민들 입장에서는 장기보다 단기가 더 중요한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력에 비해 복지가 후진적이었던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견 과도한 복지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1인당 소득 2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분출하는 복지수요를 적극 수용해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수진영이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보수언론을 앞세워 증세를 금기시하는 시각이다.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는데 필요한 재원은 결국 증세로 마련해야 한다.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고 탈세를 엄중히 다스리며 각종 세금감면 혜택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고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증세는 소비와 투자 위축을 낳고 경제성장을 낮춘다. 반대로 감세는 소비와 투자를 증가시켜 경제성장을 높인다. 이 긍정적 효과 때문에 MB정부가 감세를 금과옥조로 삼아왔다. 그러나 감세의 긍정적 효과가 얼마나 큰가는 감세규모와 경제환경에 의존한다. 요즘같이 세계경제가 불확실성 요인이 많을 때는 감세효과가 크지 않다. 같은 논리로 증세의 부작용도 크지 않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0.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6.5%보다 훨씬 낮다. 증세가 성장잠재력을 훼손한다고 양치기 소년의 비명을 지를 일이 아니다.
그래야 복지 포퓰리즘 막을 수 있어
나아가 기득권층이 최근 미국ㆍ영국ㆍ프랑스의 부자들과 같은 자발적 증세운동과 기부활동을 벌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가는 정에 오는 정'이라고 했다. 보수진영이 이렇게 큰 시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할 때 진보진영을 설득할 도덕적 권위를 갖게 된다.
일련의 무상복지와 보편복지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를 남유럽처럼 망가뜨릴 수 있다. 고소득층까지 무상급식ㆍ보육, 반값 대학등록금, 노령연금 혜택을 주겠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낳고 장기적으로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나쁜 정책이다. 포퓰리즘도 정도껏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진 것이 많은 보수진영이 한쪽으로 편향된 작은 논리를 펴니까 가진 것이 보잘것없는 진보진영이 막무가내로 나오고 사회갈등이 커지는 상황이다. 기득권층은 시장경제의 최대 수혜자다. 우리 조상들이 강조한 중용과 역지사지의 자세를 새삼 본받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