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 대전에 갔었다. 서울역에서 고속열차로 1시간 거리인 대전역에 내려 모임장소에 도착하니 반가운 친구들의 얼굴이 있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한 친구녀석이 대뜸 “야 행정수도가 정말 (충청권으로) 오는거야?”라고 작심한 듯 물었다. 녀석은 내가 중앙언론사에 근무하는 중앙부처 출입기자라서 시원한 답변을 기다리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유력 후보지 발표까지 했는데…”라며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모임이 끝날 때까지 몇몇 친구들은 계속 “기득권층이 모두 수도권에 사는데 쉽게 올 수 있을까”라는 답이 없는 물음을 던졌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을까. 지난 12일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변호사ㆍ대학교수 등이 참여한 ‘수도이전 위헌 헌법소원 대리인단’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사법부의 판단으로 넘어간 셈이다.
그런데 이날 청와대와 여당과 야당,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자와 찬성론자들이 한결같이 발표한 성명의 내용이 참 기이하다. 모두 한목소리로 “행정수도 이전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태도를 “국회의 존재근거와 민주적 국정시스템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정치공세”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야당도 이에 뒤질세라 대변인 논평에서 “수도이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요구를 ‘정권 흔들기’ ‘대통령 퇴진요구‘ ‘불신임’으로 보는 것은 수도이전을 정권안보에 이용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밖에 이날 발표된 손학규 경기지사, 서울시의회 등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자들과 이에 맞서는 충청권 지도층과 지방의회의 성명전 골자도 ‘국가 백년대계인 행정수도 이전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문제는 애초부터 정치적으로 시작된 사안이다. 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충청권 행정수도를 거론했고 충청권은 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몰표’로 이에 화답했다. 또 한나라당도 이를 만회하기 위해 총선 직전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찬성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결국 정치적으로 얽힌 실타래는 ‘정치력’으로 풀어야 한다. 청와대와 여야는 막말이 오가는 성명전이 아닌 대화시스템을 복원시키고 수도권과 충청권의 지도자들도 감정대립이 아닌 ‘최선’ 아니면 ‘차선’의 대안을 찾아 대화해야 한다. 남북ㆍ동서로 갈라진 한반도가 또 수도권과 충청권으로 갈라지는 일만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