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독일 30년 전쟁이 종식되면서 인류는 전쟁이 없는 국제사회를 원했지만 350여년이 지나도록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 1ㆍ2차 대전에서 연합국은 `전쟁 종식을 위한 전쟁`을 명분으로 참전했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1989년 미래학자들은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한국에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그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는 미국과 영국이 제출한 결의안과 프랑스, 러시아, 독일이 제출한 또다른 결의안이 제출됐다. 미국의 것은 대량살상을 막기 위해 이라크를 공격하자는 내용이고, 프랑스의 것은 이라크가 무기를 버리도록 사찰을 더 연장하자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두 결의안이 모두 전쟁을 방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강대국 사이에 대결구도가 숨어있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 하고, 프랑스는 그 대항세력의 중심에서 평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정황으로는 두 결의안이 모두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프랑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수의 싸움으로 명분을 얻으려 하고 있다. 거부권 행사가 없을 경우 비상임이사국을 포함 15개 이사국중 9개국의 동의를 얻어야 결의안이 채택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15개국중 11개국이 사찰을 연장하자는 프랑스 안에 동조하고, 스페인과 불가리아만이 미국과 영국을 지지하고 있다.
앞으로 2주 사이에 또다른 변수가 생길 여지는 있지만, 유엔 결의안을 놓고 벌이는 이번 국제전은 미국에 패배를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유엔에서 밀릴 경우 나타날 현상은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미국의 세계 주도권이 약해지고, 미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했던 금융시장이 흔들릴 소지가 있다. 둘째, 미국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단독 전을 벌일 경우 엄청난 군비를 혼자서 지불해야 한다. 셋째,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더 높아지고, 국제 유가는 조만간 배럴당 40달러로 상승할 것으로 우려된다.
전쟁이냐, 평화냐. 이 해묵은 논쟁이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다가온 주제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이 취임하는 그날에 세계의 정부를 자처하며 만들어진 유엔에서 이 논쟁이 불붙은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이 어렵고, 새정부가 큰 숙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거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