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금리도 좋다” 은행에 급전 SOS

기업 자금난 악화 실태ㆍ전망 시중에 돈이 넘치는데도 기업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실물경기 회복을 위한 정부의 경기부양 대책이 겉돌고 있다는 반증도 된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후 확산된 투신권 환매사태와 카드채 파문 등으로 은행권으로 급격하게 옮겨갔던 자금들이 여전히 `부동자금`으로 남은 채 주식이나 회사채, 기업어음 시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기가 되살아 나려면 돈이 기업으로 원활하게 흘러 들어가면서 투자가 활성화되고 소비도 활기를 되찾아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기업들은 매출감소와 불투명한 경제전망,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 등으로 잔뜩 몸을 움츠리면서 설비투자보다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현금비축` 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자금을 원활하게 융통해 주지 않자 갑자기 자금수요가 생기면 당좌대월이나 회전대출을 통해 일시적으로 자금을 끌어다 쓰는 등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금융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정책의 일관성 확보와 신뢰회복이 우선돼야 하며 은행의 기업금융 위축에 대해서도 정부차원에서 별도의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업들 대출요청 쇄도=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지난해까지 감히 돈을 빌려 쓰라고 하기도 어려운 우량기업의 자금담당자가 찾아와 금리를 올리는 조건에도 대출을 받겠다고 해서 크게 놀랐다”며 최근의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기업들이 회사채나 CP발행 등을 통한 직접적인 자금조달이 막히자 은행으로 한꺼번에 몰려 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상당수 대기업의 경우 당장 자금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경제상황이 워낙 불안하다 보니 향후 2~3년에 닥칠지도 모르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무작정 현금을 쌓아 놓고 보자는 성격이 더 강하다. 실제로 초우량 대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우리은행에서 2,500억원의 단기자금을 빌렸다. 현금보유량만 무려 5조원에 달하지만 매출이 줄면서 영업이익도 줄고 투자는 늘리면서 현금비축분이 갈수록 감소하자 서둘러 자금확보에 나선 것이다. 반면 경영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중견ㆍ중소기업들은 당장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도 벅찰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특히 일부 중견기업들은 올들어 회사채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자 자산매각 등을 통해 서둘러 현금확보에 나서고 있다. ◇“급전이라도 끌어쓰자”=은행의 당좌대출과 회전대출의 한도소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은 기업들이 급전까지도 조달해서 사용해야 할 만큼 자금난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기업들은 통상 부채비율 관리를 위해 분기 말에는 일시적으로 당좌대출을 상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SK글로벌 사태 직후인 지난 3월말에는 오히려 당좌소진율이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여의치 않자 미리 한도를 잡아 놓은 당좌거래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자금을 융통해 자금수요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출자체를 중단한 것은 아니지만 SK글로벌 사태후 재벌에 대한 위험도를 새삼 느끼기 시작하면서 가급적 우량기업이 아니면 대출조건을 까다롭게 가져가고 있다”며 “기업들이 경기가 한창 좋을 때처럼 은행 돈을 마음대로 빌려가는 상황이 다시 전개되기 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중소기업들의 경우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꺼리면서 거래 대기업들이 물품대금 결제를 미루는 통해 자금난이 한층 심하다며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안감 해소가 문제=전문가들은 시중에 자금이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지 않고 있는 `돈맥경화` 현상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정부정책의 신뢰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영업실적 악화에다 경영권 상실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고 한계기업들은 경기불안으로 퇴출에 기로에 서서 시한부 삶을 이어가고 있다”며 “정부가 모두가 불안해 하고 있는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줘 투자를 유도하는 한편 금융권을 통한 자금지원을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기업들도 투명한 경영과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통해 스스로의 신뢰를 확보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진우기자 rain@sed.co.kr>

관련기사



이진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