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7월 9일] <1744> 윌리엄 바클리


산업다각화와 무역입국, 장기집권과 독재, 측근의 배신. 낯설지 않은 단어들의 주인공은 현대를 살았던 한국인이 아니라 17세기 영국인이다. 윌리엄 바클리(Sir William Berkeley). 두 차례에 걸쳐 28년간 버지니아 총독을 지내 주지사까지 포함해 역대 최장수로 꼽히는 인물이다. 옥스퍼드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찰스 1세의 가신으로 두 차례 전쟁에 참전해 기사작위를 얻은 그가 버지니아 총독으로 부임한 시기는 36세인 1641년. 그는 먼저 땅부터 사들여 강한 발언권을 행사하던 대농장주 그룹에 끼었다. 여의도 세 배 크기의 땅에 그는 담배뿐 아니라 각종 과수와 옷감의 원료인 아마 등을 심었다. 총독으로서의 경제정책도 마찬가지. 산업다각화를 밀고 나갔다. 당시 버지니아는 담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던 상황. 신부를 사들이고 임금을 지급하는 화폐로도 사용될 만큼 의존도가 높았다. 농작물 다양화와 면직 및 비단산업ㆍ조선업을 육성하던 그는 영국내전으로 총독직을 잃었던 시기에도 농작물 다각화에 힘을 쏟았다. 왕정복고와 함께 총독으로 돌아온 뒤에는 본국과 충돌을 빚었다. 교역을 제한하는 영국에 맞서 네덜란드와 프랑스ㆍ서인도제도 등으로 무역다변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본국의 견제와 사촌처남의 반란으로 권력을 잃은 그는 1677년 7월9일, 뜻을 이루지 못한 채 72세로 숨을 거뒀다. 선각자로서의 면모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은 것 같다. 부정적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가 올렸던 감사기도 탓이다. 바클리의 기도가 통했다면 미국의 오늘날이 가능했을지 궁금해진다. '버지니아에 공짜 학교도, 인쇄물도 없는 점을 신께 감사 드립니다. 배움이 불복종과 분파를 낳고, 인쇄물은 정부를 비방하는 중상모략을 퍼뜨렸나이다. 수백년간 이런 것들이 없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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