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의 성공담은 다른 외국인투자가에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후 국내기업을 사냥하려는 외국인의 움직임이 여기저기에서 포착되고 있다.”(한 투자자문사 관계자)
최근 외국인투자가들이 국내 우량기업을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소버린이 촉발시킨 것이다. 소버린은 말 그대로 한번의 시도로 투자원금의 4배(7,500억원)를 벌어들였다. 이를 목격한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시장을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쯤으로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다.
이들 외국자본은 최근까지도 국내기업의 미래 성장가능성보다는 자사주 매입, 고배당 요구 등을 통해 과실 빼먹기에 급급했다. 나아가 경영권 분쟁을 통한 주가 띄우기 등 곳곳에서 부작용을 일으켰다.
앞으로는 아예 기업 경영권 장악을 시도할 태세다.
◇적대적 M&A 무차별 노출=현재 상장사의 외국인 비중(시가총액 기준)은 43%를 넘는다. 특히 삼성전자ㆍ포스코 등 대표기업은 60%를 훨씬 넘는다. 대기업의 최대주주 비중이 2~3%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경영권 위협 가능성은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외국인의 경영권 접수는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다. 외국인이 1대주주(지분 5% 이상)인 상장사는 지난 8월 말 현재 33개에 달한다. 한미ㆍ하나ㆍ국민은행 등 금융권은 물론 에스원ㆍ한국전기초자ㆍ한라공조 등 제조업도 부지기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실기업 매각 등을 제외할 경우 외국인에 의한 M&A 사례는 소버린ㆍ골라LNG 등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도 “최근 동향을 감안할 때 외국인의 한국기업 사냥은 조만간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ㆍ현대산업개발 등은 외국인의 지분매집으로 M&A 논란이 일고 있다. 또 덴소ㆍ아시안인터스트리 등 외국계 자동차부품사들은 ‘알짜’ 중소기업 인수 등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경영권 간섭 본격화=오는 1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미국계 장기투자펀드인 캐피털그룹의 투자전략회의에는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ㆍSK㈜ㆍ신한금융지주 등 4개사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참석한다. 외국인투자가의 막강한 영향력 탓이다.
캐피털그룹은 지난 2001년 삼성전자에 대해 미국으로 본사 이전을 제시했던 펀드. 가치투자 펀드가 경영권 간섭 논란을 일으킬 정도니 투기자본의 폐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다.
SK㈜의 한 고위관계자는 “외국인투자가들은 중장기 시설투자는 하지 말고 배당 성향만 높이라고 요구한다”며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앞두고 있어 마냥 거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최태원 SK㈜ 회장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18%에 불과하지만 소버린은 자체 지분 14.99% 등 30% 이상의 우호지분을 확보하고 있어 내년 주총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대한해운 2대주주인 골라LNG도 최근 가스공사 전용선 입찰에 공동 참여하자고 요구하는 등 경영권 간섭의 뜻을 이미 드러내고 있다. 외국인에 의한 기업 과실 빼먹기도 도를 넘은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7월 외국인들의 증권투자소득(주식배당ㆍ채권이자 등)은 53억9,100만달러로 지난해 수준(25억8,700만달러)을 이미 넘어섰다. 이는 1~7월 외국인직접투자액 39억6,200만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대책이 없다=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의 막은 올랐지만 국내기업은 출자총액제한 등 각종 역차별 조치로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자유화, 외국인 투자 철폐 등으로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장치가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 반대’라는 시민단체 논리에 밀린 사모투자펀드(PEF) 활성화 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라도 4% 이상에 대한 대기업의 PEF 투자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조항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또 ▦미국ㆍ유럽 등이 시행 중인 독소조항이나 다중의결권주식제도 ▦적대적 M&A 공격 때는 3자 배정방식의 신주발행 등을 허용하는 한편 투기성 펀드의 공격이 명백할 때는 정부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