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리빙 앤 조이] 왜곡된 시선, 단절된 가족, 우회하는 사랑

이누도 잇신 감독 '메종 드 히미코' 조용한 관객몰이<br>임종 앞둔 아버지를 찾는 딸<br>소통을 가능케하는 사랑의 힘<br>자극적인 소재 차분하게 풀어



[리빙 앤 조이] 왜곡된 시선, 단절된 가족, 우회하는 사랑 게이 아버지와 딸…그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애인이누도 잇신 감독 '메종 드 히미코' 조용한 관객몰이임종 앞둔 아버지를 찾는 딸소통을 가능케하는 사랑의 힘자극적인 소재 차분하게 풀어 이상훈 기자 flat@sed.co.kr 지난 1일, 기자의 이메일함에 영화 ‘메종 드 히미코’의 수입사로부터 메일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개봉 닷새만에 전국관객 1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순간 상쾌한 아찔함이 머리를 감쌌습니다. ‘왕의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바라보고 ‘투사부일체’가 400만 관객을 넘어선 2006년 2월, 1만명 돌파를 ‘감격적으로’ 알리는 그 신선함이라니…. 1만명 돌파 소식에 기자는 그 날 밤 극장을 찾았습니다. 고백하자면, 바쁘다는 핑계로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수많은 영화를 어떻게 다 봐’ ‘예술영화는 독자들도 재미없어 할 거야’라고 자기합리화를 시키며 스스로를 타일렀습니다. 뒤늦게 개봉관에서 본 이 영화, 색다른 재미에 2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최소 1주 이상은 더 상영할 거라는 수입사 측의 소식을 위안삼으며 뒤늦게 이 영화를 소개합니다. 다소 ‘생뚱맞게’ 개봉 3주차에 접어든 상영중인 영화 리뷰를 쓰는 변명입니다. 1,000만 관객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도, 1만 관객 대열에 몸을 담그는 색다른 동질의식에 더 매료될 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누도 잇신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조제…’를 기억하시는지요. 지난해 국내 개봉 당시 3개월 이상 장기상영되며 4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예술영화로서는 가히 경이적인 인기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당시 수입사는 부가판권 등으로 수입가의 4배가 넘는 ‘대박’ 수익을 거둬들인 바 있습니다. 주인공 츠마부키 사토시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등 국내에선 드물게 일본 스타로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조제…’가 평범한 대학생과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소녀의 ‘특별한’ 사랑을 그렸다면, ‘메종…’은 게이 양로원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스크린에 펼쳐 놓습니다. 게이 아버지의 딸이 아버지의 남자 애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언뜻 들으면 현실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극적이기만 한 스토리로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는 이 같은 극단적 이야기를 차분한 눈길로 따뜻하게 풀어냅니다. 굳이 거칠게 비교하자면 잇신 감독은 이창동 감독과도 작은 부분 공통점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 감독이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을 통해 쿠데타에 몸담은 군인, 장애인, 전과범 등 세상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를 편견없이 바라보려 노력했다면, 잇신 감독 역시 장애인, 게이 같은 소외된 이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집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세상 사람들에게 좀처럼 이해되기 힘든 놀랍지만 아름다운 사랑이 펼쳐집니다. ‘메종…’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가난한 여자 사오리. 아버지가 있지만 오래 전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하며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어느 날, 사오리에게 멋진 청년이 찾아옵니다. 그는 아버지의 연인이라며 아버지 얘기를 들려줍니다. 집을 나간 뒤, 아버지는 게이바를 운영했고, 지금은 멤버들과 함께 게이 양로원을 운영하며 살아간답니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를 들은 사오리는 아버지가 있는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로 갑니다. 아버지를 증오하지만, 사오리는 돈이 더 급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늙은 게이들이 모여사는 양로원. 사오리는 그들에게 혐오감 마저 느낍니다. 그러나 그들의 꾸밈없는 모습과 이면에 숨은 외로움을 바라보며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사오리는 그들을 ‘의무를 팽개친 이기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실상 그들은 세상과 제도로부터 거부당한 아웃사이더들입니다. ‘아버지의 애인’인 젊은 청년은 게이답지 않게 사오리를 사랑합니다. 요즘 극장가에 동성애 코드 열풍이 분다는 기사를 보셨을 겁니다. 이 영화 역시 한 몫을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동성애자들을 결코 미화하지도 헐뜯지도 않습니다. 2시간 중 동성끼리 육체를 탐닉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주인공 사오리가 바로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만 충실한 게이에게 상처받은 여자입니다. 영화 끝까지 사오리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게이 아버지도 냉정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게이로 산 것을 후회한 적이 없느냐”는 사오리의 질문에 아버지는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아버지와 딸의 의사소통 부재와 갈등. 꼭 게이 아버지를 둔 딸만 겪어야 할 갈등일까요? 그렇게 영화는 가장 독특한 소재로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문을 조금씩 열어갑니다. 알고 보니, 사오리의 어머니는 게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바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끔씩 찾아가곤 했답니다. 그렇게도 게이를 증오했던 주인공이 댄스클럽에서 게이라고 낄낄대며 놀리는 취객에게 주먹을 휘두르기까지 합니다. 영화는 말합니다.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관계는 없다고. 상대가 누구이건 마음을 열면 ‘소통’은 가능하다고. 그 ‘소통’은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지루하게까지 느껴질 차분함. 영화를 내내 지배하는 감성입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국내에서 각광받는 일본 영화들에게서 느껴지는 공통적인 감성 코드이기도 합니다. 슬프면서도 쿨한, 그러면서도 따뜻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입니다. ‘메종…’은 제 2의 ‘조제…’ 신화를 쓸 수 있을까요? 현재 종로 시네코아와 명동 CQN, CGV 강변ㆍ상암ㆍ서면에서 조용히 관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입력시간 : 2006/02/08 13:24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