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증권시장은 하나의 시장을 향해 빠른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20세기말에 나타난 전자주식 거래시스템은 뉴욕 증권시장을 세계 증권시장으로 확대시켜 놓았다. 새 세기엔 세계 증권시장의 단일화, 24시간 거래가 확고하게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타일러씨의 스토리는 이미 뉴욕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에게 널리 확산된 평범한 투자기법이다. 타일러씨는 아직 뉴욕 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에 상장된 외국 기업의 주식(ADR)을 사는데 그치고 있지만, 몇년후엔 외국 현지의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할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그 혁명의 직접적 동인은 인터넷이요, 온라인이다. 하루에 수조 달러가 움직이는 금융 거래는 클릭과 키보드의 움직임에 의해, 전화선 또는 케이블을 통해 전달되는 광속의 주파수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화폐는 거래 테이블에서 사라지고, 디지털 신호가 새로운 신용을 창출, 시공(時空)의 벽을 허물고 인류 전체 코뮤니티를 하나로 묶고 있다. 뉴욕 증시의 사이버 혁명은 전세계 시장 단일화 뿐 아니라 24시간 증시 개장 세계 증시 동조화 데이트레이더로 불리우는 개인 투자자 확산를 초래하고 있다.
전자주식거래 네트워크(ECN)를 운영하고 있는 프리멕스사는 미국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와 모건스탠리 딘위터, 살로먼 스미스바니와 함께 올 여름에 전자 주식경매시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경매소가 자리를 잡으면 세계 최대증권거래소인 NYSE의 절반 물량의 주식이 거래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년전 트레이더들이 뉴욕 월가 나무그늘에 앉아 주식을 거래하던 직접 거래방식은 온라인 서버의 발달로 사이버 거래 방식에 자리를 내주게 됐다. 시카고 옵션 거래소, 필라델피아 증권거래소, 태평양 증권거래소등 미국의 중소 지방 거래소들은 아예 존립근거를 잃게 돼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미 1990년대말에 영국 로이터 통신의 ECN 회사인 인스티넷은 전세계 40여개국의 증권거래소를 연결하며, 자국 시장에 의존해온 NYSE의 자존심을 꺾어놓았다. 기존의 증권거래소들은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받았지만, ECN회사들은 이미 24시간 체제에 돌입했다.
기존의 증권거래소들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NYSE와 나스닥은 올여름까지 저녁시간과 아침시간에도 거래시간을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아침장은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저녁장은 밤 10시까지 영업하게 된다. 뉴욕 증시는 아침장엔 유럽과, 저녁장엔 아시아와 동시간대를 가지며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부로서 해외 주식예탁증서(DR)을 끌어들이고, 해외 증시에 직접 투자할 기회를 갖게 된다.
나스닥은 유럽과 일본에도 증권거래소를 개장, 재래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도쿄 증권거래소와 유럽 증권거래소들과 경쟁할 방침이다. 나스닥은 일본의 인터넷 거장인 손정의(孫正義)씨를 통해 한국에도 나스닥을 개장할 계획을 발표한바 있다. 급성장하고 있는 ECN 회사들이 나스닥과 연합할때 세계 증시 단일화와 24시간 영업체제의 시기는 한층 당겨질 전망이다.
사이버 거래는 투자 패턴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증권거래 수수료가 낮아지고, 브로커들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개인투자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증권거래가 뉴욕 증시 거래에 차지하는 비율은 97년초 8%에서 99년말엔 15%를 넘어섰다. 집에서 컴퓨터앞에 앉아서 주식을 사고 팔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되었기에 굳이 거래액의 2%를 수수료로 줄 필요가 없게 됐다.
온라인 증권거래는 데이트레이더라는 개인투자 군단을 형성했고, 봉급을 떼내 안정된 수익을 보장해주던 뮤추얼 펀드의 퇴조를 가져왔다. 1990년대 후반에 뮤추얼 펀드에 흘러들어가는 자금 유입량이 줄어든 것은 인터넷 혁명에 의해 개인투자자 그룹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21세기의 글로벌 금융시대에 대비, 10년전부터 시중은행 통폐합(M&A), 금융산업 장벽 해제등 금융 빅뱅을 단행했다. 1998년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 그룹이 합병, 시티그룹을 탄생시켰고, 곧이어 네이션스 뱅크와 뱅크 어메리카가 합병했다. 이에 앞서 뱅크원은 퍼스트시카고 은행과 퍼스트 유니언은 코어스테이트 은행과 체이스맨해튼 은행은 케미컬 은행과 각각 합병함으로써 미국 5대 은행의 서열이 형성됐다. 체이스맨해튼 은행과 메릴린치 증권의 합병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미국 뱅킹 시스템에서 M&A의 큰 흐름은 거의 끝났다는 것이 월가의 정론이다.
「큰 것이 아름답다」는 논리로 무장한 미국의 대형은행들은 중복부문을 도려내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순이익을 냄과 동시에 여수신 업무에서 증권·보험·채권을 망라한 금융산업의 백화점 경영이 가능해졌다. 빅뱅을 통해 공룡화한 미국 은행들은 10년전 독일과 일본에 밀렸던 상황을 역전시키고, 다시 세계 주도권을 회복했고, 새로운 세기에는 글로벌리제이션을 주도한다는 목표를 야심차게 펼치고 있다.
20세기초 영국은 군함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면서 무력에 의한 제국주의는 퇴조하고, 세계는 마켓의 힘에 의해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금이 분명히 그어졌다. 1990년에 접어들면서 공산권이 무너진후 미국은 금융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라고 인식, 뱅킹 시스템과 자본시장을 육성했고, 지난 10년동안이 그 와중에 있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은 지금, 미국은 새롭게 정비한 금융시스템을 통해 글로벌리제이션을 가속화하고 있다. 여기에 하이테크 산업이 창출한 사이버 시스템을 동원하며, 전세계 자본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