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떠오르는 기회의 땅] 2-5. 파라다이스는 없다

“집주인인 할머니는 최근 거의 매일 술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지난 달에는 월세를 낼 시기가 지났는데 주인 할머니가 돈을 받으러 오지 않아서 출근길에 시간을 쪼개 (월세를) 갖다 줬다.”(이강길 삼성전자 과장ㆍ헝거리법인 재무담당) 헝가리도 마치 우리나라의 `아파트 투기 열풍`처럼 지난해부터 집값, 땅값이 폭등하고 있다. 현지인들 사이에선 요즘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 집을 사는 것이 유행이다. 이 할머니 역시 최근의 부동산 열풍에 편승해 부다페스트에 3채의 아파트를 매입해 `놀고먹는 한량`이 됐다. ◇집값ㆍ땅값 1년새 두배=헝가리 투자청의 레벤테 파올로씨는 “공식 집계치는 없지만 공장을 임대할 경우 통상 1평방미터당 월 4~7유로 정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정도 가격은 지난 1년전에 비해 대략 두배 가량 오른 것이라고 한다. “독일ㆍ프랑스 사람들도 휴양지를 마련하기 위해 이곳에 투자를 한다. 최근에는 오는 5월 EU 가입을 핑계삼아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는 모습이다.”(김상철 KOTRA 헝가리무역관장) 이러다 보니 외국자본의 유입이 위축되는 모습이다. 취재팀이 체코 프라하에서 만난 프랑스 알스톰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헝가리에 중전기공장을 마련하려 했지만 높은 부동산 가격 부담 등을 고려해 포기했다”며 “여러가지 요인을 감안해 슬로바키아를 투자적지를 꼽고있다”고 말했다. ◇인건비 상승ㆍ인력난 2중고 우려= 동유럽은 지금 부동산가격뿐 아니라 인건비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TV브라운관 및 모니터를 생산하고 있는 삼성SDI 헝가리법인은 요즘 매일 인접국가인 슬로바키아에 통근차를 보낸다. 헝가리의 인건비가 너무 높아져서 아예 슬로바키아 사람들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기술이 숙달됐다 싶은 근로자가 어느날 출근하지 않는다면 영락없이 도회지로 나간 것이다. 주변의 인건비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다 보니 한곳에 진득하게 붙어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김창곤 삼성SDI 상무ㆍ헝가리 법인장) 특히 동유럽의 선두 주자인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의 경우 가파른 임금 상승으로 원가 절감만을 고려한 현지 진출 전략은 이미 한계에 부닥쳤다. 이 때문에 유럽ㆍ일본업체들은 저부가 제품 공장을 중국으로 다시 이전하는 추세다. 단순 저부가 제품의 경우 당분간은 경쟁력이 있을 지 모르지만 2009년부터 EU권역내에서 인력이동이 자유로워진다면 얼마 안돼 저임금 메리트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여건 아직 불안= 게다가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빈부격차 심화, 경상 적자 및 재정적자 등도 사회 불안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2002년 기준)는 헝가리 9.6%, 체코 7.1%, 슬로바키아 7.2%, 에스토니아 12.3%에 달한다. 또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실업률, 통신ㆍ물류 등 취약한 산업 인프라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들 국가들은 EU 가입으로 연간 4~6%의 고성장이 예상되지만 위기 요인도 존재한다”며 “국내 업체들도 선진 다국적 기업처럼 고부가 제품 생산, 경영 현지화 등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헝가리는 중유럽중심 물류기지 유리, 외국자본들 주목" [인터뷰]피터 스파닉 헝가리 투자청 부청장 “헝가리는 중유럽(이곳 사람들은 동유럽이란 용어를 극도로 싫어한다)에서도 정확하게 중심부에 있다. 지리적 잇점 때문에 물류기지로도 매우 유리해서 많은 외국 자본들이 주목하고 있다. 오는 5월 EU에 가입하고 나면 헝가리의 장점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서울경제 동유럽취재팀이 만난 피터 스파닉(Peter Spanyikㆍ사진) 헝가리 투자청 부청장은 EU가입을 앞둔 헝가리의 미래에 대해 시종일관 자신만만했다.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사회간접자본(SOC)과 숙련된 노동인구. 사회주의 체제 때부터 육성시켜 온 중공업 기반, 서유럽에 비해 1/4밖에 안되는 인건비 등등 다양한 장점을 지니고 있어 동유럽 국가들 가운데는 비교의 대상이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스파닉 부청장은 최근 헝거리의 집값, 땅값이 너무 뛰어서 외자유치가 어렵지 않겠냐는 취재팀의 지적에 대해서도 “시장이 결정할 문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며 가볍게 받아 넘겼다. 헝가리는 그동안 법인세 유예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EU가입국이 되는 올해부터는 EU 기준에 따라 이 같은 국가차원의 세금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금지된다. 스파닉 부청장은 “올해부터 간접적인 투자메리트를 늘리기 위해 노동력을 보다 고도화시키는데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직장인 재교육을 위해 상당한 예산을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내국기업은 물론 외국기업들도 근로자들의 교육을 의뢰하면 3개월 안에 소화할 수 있을 정도”라며 “직장인 재교육 프로그램은 앞으로 보다 광범위하고 심도있게 펼쳐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헝가리는 어떻게 하면 외국기업이 자유롭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며 “사실 오늘(취재팀이 방문했던 지난해 12월15일) 내각의 경제관련 장관들이 모여 외국기업들의 불편을 해소해줄 수 있도록 원스톱서비스(One Stop Service)를 펼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헝가리에서 투자할 만한 대상이 아주 많을 것”이라는 스파닉 부청장은 (한국기업이) 가전품 제조, 휴대폰 조립, 플라스틱사출성형, 금속가공, 자동차, 관광 등에서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EU가입, 동유럽에 불리할수도 EU 가입은 동유럽 국가들에게 장미빛 미래를 보장해주는 게 아니다. EU집행위는 현재 `법인세 면제 등 동유럽 국가들의 투자 인센티브나 경제특구 제도가 유럽 단일 시장을 왜곡하는 불공정한 제도`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공헌해온 `10년간 법인세 면제(헝가리)`, `투자유치를 위한 경제특구제도(폴란드)` 등의 조치가 점차 폐지될 운명에 놓여 있다. 또 헝가리ㆍ리투아니아ㆍ체코ㆍ슬로베이아ㆍ에스토니아ㆍ리트비아 등은 EU 기준에 맞춰 컬러TVㆍ컬러브라운관 등의 관세율을 올릴 예정이다. 환경 기준ㆍ노동 조건 등 EU의 선진시스템을 무리하게 도입할 경우 후발 개발도상국의 메리트를 상실할 염려도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건비가 싸고 EU의 관세 장벽을 피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 습성이 남아서 노무관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상당히 낙후돼 있는 상황입니다. 인건비나 땅값 폭등이 지금 같은 추세라면 중국ㆍ인도네시아에서 제품을 만들어 들여오는 게 더 경쟁력이 있습니다.” (김진안 삼성전자 상무ㆍ폴란드 판매법인장) 새로운 자세와 비전을 갖고 동유럽에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삼성SDI헝가리법인 직원들에 먼지없애기 독려, 모니터등 생산 불량률 낮춰 TV브라운관, 모니터를 생산하는 삼성SDI 헝가리법인의 김창곤 상무는 현지 근로자들을 만나면 항상 `고양이 잡았냐`고 묻는다. 고양이는 생산현장에 뭉쳐서 돌아다니는 먼지덩어리를 뜻하는 이곳 공장의 은어. 삼성SDI가 취급하는 상품이 고도의 청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니 김 상무는 현지직원들이 틈나는 대로 주변 청소를 하라는 독려를 이렇게 둘러서 표현한다. “지난 2002년 6월에 1라인을 준공했고, 2003년 4월에 2라인을 구축했습니다. 특히 2라인은 시험생산에 들어간 지 불과 한달 만에 불량률을 10%이하로 낮췄고 최근엔 하루 생산량이 최고 9,900대까지 나왔습니다.” 그는 헝가리법인이 앞으로 2년 안에 투자액을 모두 회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지 시장이 확장되는 시기인데다 양질의 인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1,300명에 달하는 이곳 근로자들은 한명 한명 모두 제가 직접 면접을 해서 뽑은 사람들입니다.” 김 상무는 비록 현지 언어나 습관, 표현방식 등이 낯설지만 `얼마나 밝은 표정을 하고 있나, 얼마나 인내심이 있나`를 살펴 직원을 선발한다고 했다. <부다페스트(헝가리)=김형기기자 ,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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