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모금회와 정서법

김성수 기자<사회부>

고약한 법(法)이 한국에 존재한다. 헌법의 상위법이라는 ‘국민 정서법’. 여론몰이식 마녀사냥에 이용당한다는 비난도 있지만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다. 민초의 감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 아무리 권력자라도 정서법을 무시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에게 정서법 위반은 치명적이다. 높은 사람은 이유야 어떻든 깨끗해야 한다는 국민의 바람이 채찍으로 작용해 이들의 옷을 벗기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인이나 관료보다도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은 ‘사랑의 열매’가 정서법을 위반했다. 267억원짜리 회관 건물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자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러나 사랑의 열매를 가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비록 정서법을 위반했지만 실정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번듯한 집이 있으면 남에게 아쉬운 말을 안해도 되고 남는 방은 세를 줘 돈도 더 벌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법적 절차에 따라 집을 샀다는 얘기다. 모금회의 항변에 많은 국민들은 실망감을 나타냈다. 심지어 사랑의 열매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고도 한다. 내가 어려우니 남도 어려울 것이라는 심정에 쌈짓돈을 꺼내 이웃돕기에 나섰다가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굳이 267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빌딩을 사야 했었냐는 질문에 모금회의 답변은 궁색했다. 언론사가 가까운데다 그만한 건물을 다시 찾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논리는 국민 정서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게다가 모금회는 보건복지부의 특별감사 결과가 발표된 날인 지난 31일부터 홈페이지 게시판을 실명제로 운영해 네티즌의 눈총을 사고 있다. 여론의 화살을 조금이나마 피해보자는 의도로 비쳐진 것이다. 모금회는 매년 모금액의 7%를 운영 경비로 쓰고 있다. 회관을 사는 데 들인 돈도 본래 이웃돕기 성금으로 마련됐다. 모든 게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셈이다. 국민의 정성으로 운영되는 모금회가 결국 11일 새 빌딩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모금회는 국민의 정서가 새 빌딩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설픈 편법으로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사업이나 계획을 펼친다면 정서법의 회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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