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위기설, 3월 위기설 등 때만 되면 반복되는 위기설을 부추기는 가장 큰 변수는 외환시장. 통제 불가능한 역외시장의 거래에다 작은 충격에도 출렁이는 외환시장거래 시스템은 우리 경제가 위기의 불씨를 항상 품고 살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단기화된 외화의 유출입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들고 나가는 문을 만들어 통제하는 것이 무리라면 문턱이라도 만들어 와화유출입의 마찰계수를 높여주자는 것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2,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도 벌벌 떠는 이유는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며 "자본 통제에 따른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그냥 놔두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문턱 정도는 만들어야=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이후 커지고 있다. 6개월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5%가 빠져나갈 정도로 약한 시장체력에다 외신이나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평가에도 흔들릴 정도로 방향성을 잃은 외환시장은 우리 경제가 스태그디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비관론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외화거래 시스템의 문턱 중 하나가 지난 1999년 도입된 외환가변예치제(VDRㆍvariable deposit requirement).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외환가변예치제가 국제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평가한다. VDR는 외국에서 외화를 들여올 때 일정 금액을 중앙은행에 무이자로 예치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외국의 단기 투기자금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VDR에 따라 자금의 일부가 예치될 경우 중앙은행은 자금의 성격, 거래패턴 등 세부 사항까지 눈감고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같이 통화바스켓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한 통화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변동성을 줄여주기 위한 측면에서 통화바스켓 제도의 도입이나 시행 여부를 중장기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외환시장 통제는 정부의 딜레마=그렇지만 이러한 제도가 자칫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 시장의 정책ㆍ스탠스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자칫 문턱 때문에 한국시장에 대한 매력도가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헤지펀드, 시장주의자들은 투자수익률이 비슷한 지역의 경우 규제의 차이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조세제도에서부터 지방세 세무까지 철저히 조사하고 뛰어든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조세환급ㆍ감세 등을 통해 0.5% 이상 수익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유로운 투자자들은 규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또 다른 전문가들은 외환시장 규모와 외환보유액을 더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인 방법은 아니더라도 규모를 키워 변동성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더불어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것은 하나의 보험이 될 수 있다. ◇정부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투기자본에 대한 금융규제의 국제적 공조도 시급하다.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 등을 통해 외환보유액을 늘려 안전판을 확보한다면 금융규제는 아시아 시장이 더 이상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지나치게 높은 달러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지난해 전체 외환거래량(390억9,000만달러) 중 원화와 미달러화 거래는 382억1,000만달러로 98%에 달한다. 유로화ㆍ엔화ㆍ위안화를 통한 거래는 전체의 2%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수출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결제통화를 다변화해 달러 의존도를 높이는 것도 외환시장틀을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즉 유로지역은 유로로, 일본은 엔화로 결제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취하자는 것. 현석원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수출 다변화와 같이 결제통화 다변화를 추구해 달러 위주의 거래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시행방식에 있어 정부가 나서서 외환 중개를 하기에는 막대한 외화보유액이 필요한 만큼 민간기업을 비롯한 실물경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모든 결제통화를 갖고 교환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경우 회사 자체적으로 화폐거래소를 설치해두고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던 경험이 있다. 거대 기업집단에서 결제 다변화를 도입하면 달러 의존도도 벗어나고 기업 집단간 화폐교환도 가능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