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송현칼럼] 중앙은행 독립보장 어디까지

[송현칼럼] 중앙은행 독립보장 어디까지경제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경제학에도 중요한 법칙이 있고 분별이 가려지기는 하지만 이들도 단순명료하지는 않다. 한국은행에 대해 얼마 만큼의 「독립성」이 주어져야 할 것인가. 여기 중요한 예가 있다. 1850년부터 1931년까지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금본위제를 유지했다. 이 체제가 완벽하게 운영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세계에서는 무역이 확대되고 수출입업자 모두가 이익을 누렸다. 오늘날 일부 단체나 정치인들은 남미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미 달러화에 고정시키는 통화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과거 금본위제와 비슷한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람직한 생각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간단명료한 답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앞으로 영국이나 스웨덴이 유로권에 가입, 영란은행이나 스웨덴 중앙은행 자리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ECB)이 대신하게 된다면 양국은 그 대가로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최근 양국은 유로화 사용국인 프랑스나 독일에 비해 거시경제적인 측면에서 앞서가고 있다. 만약에 유럽이 심각한 침체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영국과 스웨덴은 과거부터 신속한 경기회복 수단으로 활용해온 통화가치의 평가절하를 단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두번째로 과연 중앙은행의 진정한 독립이 바람직한 것인가. 영국과 일본·뉴질랜드 등의 나라에서는 이론상으로 정치와 무관한 중앙은행 총재들이 신용정책 등을 자율적으로 수립할 수 있게 돼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잘못된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이 양극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최근에 일본에서 일어난 논란의 배경이 된다. 대장성과 의회로부터 독립성을 부여받은 일본은행의 총재는 90년대 일본 경제 침체가 장기화된 이후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하락했던 단기금리를 끌어올리겠다고 밝혀왔다. 그리고 그는 대장성과 총리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리 인상을 단행함으로써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입증했다. 이를 두고 일본과 해외의 많은 전문가들은 아주 미숙하고 위험한 결정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본 경제가 어느 정도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회복세가 확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신용긴축이 경기 회복세를 불안에 빠뜨리고 일본을 다시 침체 국면으로 몰고갈 수도 있지 않은가. 소폭의 상승세를 보여온 일본의 인플레율이 일본은행의 이번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일본이 엔화 환율을 높이는 것이 정말로 잘하는 일인가. 필자가 경제학자로서 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내려보려 한다. 일본은행 총재가 독립성을 (좋게든 나쁘게든) 입증하지 못한다면 체면을 구길 것인지 여부는 감안하지 않고 말이다. 우선 지난 99년과 2000년에 일본이 인플레 압력에 시달렸거나 조만간 인플레가 발생할 것이라는 위협을 느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는 통계상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일본은행은 인플레 발생을 주장하는 새로운 보고서를 낸 적이 없다. 둘째로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이 완만한 경기침체에 빠지는 것보다는 소폭의 인플레를 겪는 것이 낫다는 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 그 편이 일본의 경제회복에 필요한 자극을 더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회복에 필요한 자극이 충분히 가시화된 다음에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은 모두에게 박수를 받을 것이다. 일본이 선진 7개국(G7)들에 맞먹는 성장세를 보일 수 있다면 2003년쯤에는 일본은행도 금리를 한국이나 다른 해외 선진국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리려할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일본은행의 이번 결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기가 그렇게 불안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이 침체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착각하기를 여러 차례 거듭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잘못을 되풀이하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또 다른 기술적인 문제가 따른다. 경제운영을 잘못한 나라가 「유동성 함정」에 빠질 경우(93~2000년에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에는 금리변화가 일어나도 통상 경제 성장률이나 명목 물가상승률에 대해 행사하던 잠재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업 부도율도 문제시된다. 소비 및 투자 수요가 정상 수준을 되찾지 못한 상황에서 금리를 불쑥 올려놓으면 위기에 빠졌던 일부 기업이나 은행들이 파산으로 내몰릴 것이다. 80년대만 해도 G7회담에서 일본 관리들의 발언은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졌었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수완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90년대들어 열린 G7회담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번에 변덕스러운 일본은행 총재가 일으킨 찻잔 속의 폭풍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위상을 한층 약화시킬 것이다. 몇년 후에 일본이 한국·핀란드·아일랜드와 같은 회복세를 되찾을 수 있다면 이 모든 어려움도 과거지사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의 유권자들에게는 한국은행에 대해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허용해야 할지 여부가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 /폴 새뮤얼슨 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입력시간 2000/09/09 17:47 ◀ 이전화면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