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민연금도 정치바람 홍역

빚더미에 내몰릴 처지인 가문이 있다고 치자. 문중의 대부분이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살림살이가 거덜난다는 사실은 비밀 아닌 비밀. 후대에게 엄청난 빚을 물려주게 생기자 여기저기서 고민과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급기야 종가집에서 나섰다. 제대로 공부한 똑똑한 젊은이, 즉 전문가들을 소집해 대책 마련에 나선 것. 기대에 걸맞게 이들은 밤 세워 대안을 찾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문제가 생겼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빠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가문이 어디냐고 바로 한국이다.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된 상황이 꼭 이렇다. 국민연금이 오는 2048년이면 고갈된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 최근의 연금운용수익률을 감안하면 고갈시기는 이보다 더 빨라질 전망이다. 종가집 격인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제도 개선의 핵심인 재정문제를 다룰 전문가 위원회가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처음에는 의욕과 열의로 시작했던 전문가들이 이제는 더 이상 모이지 않는다. 정치 바람 탓이다. 국민연금의 재정 문제를 다루는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대학 교수가 모 정당 대통령 후보의 진영으로 들어갔고 핵심 멤버였던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도 대(代)를 이어 국회의원을 하겠다며 지역구로 내려갔다. 때문에 그 위원회는 성원조차 힘든 상황이다. 무엇을 하든지 그 것은 개인의 자유다. 국민연금 개혁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개인의 자유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문제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국가나 사회의 개혁방향에 차질이 생긴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보다 더 치열한 선거경쟁을 치르는 나라 중에는 흐르는 강물처럼 발전해 가는 국가도 적지 않다. 그 뒤에는 건강하고 건전한 공무원 조직과 전문가 집단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우리는 정반대다. 이리저리 당을 옮기는 정치 철새도 아니고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도 아닌 학자나 전문가들 마저도 정치 때문에 '전문가'로서 할 일을 마다하고 있다. 사회가 혼란스러워도 전문가 집단이 중심을 잡는다면 나라가 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문영역을 버리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 실감난다. 씁쓸하다. 권홍우<경제부>기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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