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조기수혈로 환율 잡아야”/정부 미봉식처방 신뢰회복 저해/정치권도 「무책임한 발언」 자제를외환·자금·주식시장이 공황상태로 치달으면서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 우리 경제가 자칫 회생불능의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 지경에까지 이른 직접적인 이유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의과정에서 우리의 외채규모 및 구조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새삼 드러난데다 IMF의 자금지원 규모나 일정이 상황을 단기간에 호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단기외채 규모는 현지금융을 포함, 줄잡아 1천억달러를 훨씬 웃도는 반면 IMF프로그램에 따른 지원규모는 5백70억달러에 불과하다. 더욱이 2차 지원분인 2백20억달러는 미국과 일본의 자체 사정에 따라 아직도 제때 집행될지 의문시되고 있다. 미업계와 의회가 IMF협약외에 시장개방을 중심으로 한 추가 지원조건을 요구해야 한다고 행정부에 강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IMF 협의내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엇갈려 한국 경제에 대한 향후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 것도 사태악화의 주요원인이다. 이에 따라 국제 금융기관과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에 대해 여전히 등을 돌리고 있다.
IMF협의에 대한 한국의 실행의지가 불투명하게 비춰지는 것도 이들이 선뜻 나설 수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권주자들의 재협상 요구도 실제 이상으로 증폭돼 알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외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대내적으로도 정부의 잇단 정책 실기와 정치권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대해 아직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한채 미봉식 처방만 되풀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회사채 표면금리가 20%를 넘어섰고 법정상한선인 25%까지 올라간 기업어음(CP) 등 단기금리는 요지부동인 상태다. 환율도 연일 개장과 동시에 상한선까지 오르며 시장기능을 전면 상실했고, 주가는 끝없이 폭락하고 있다.
이처럼 대내외에서 불신이 팽배해짐에 따라 국제금융기관들이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을 또다시 서둘러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또 하향조정했다. 특히 이번 조정은 프라임에서 NOT프라임으로의 조정이어서 단순한 단계조정이 아니라 대외차입 여력이 사실상 봉쇄된 거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국내 금융시장은 회복이 불가능한 공황상태에 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시장관계자들은 내주초 환율 2천원대, 주가 3백선이 무너질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는 15일이 「블랙 먼데이」가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차적 과제는 환율방어다. 환율이 불안정할 경우 외국인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50%로 확대된 첫날 들어온 돈이 불과 2억달러에 그친 것도 바로 환율 불안이 외국인들의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황급히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IMF자금지원 규모 및 일정에 대한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우리의 단기외채가 1천억달러에 이르는 점을 감안, 지원규모를 보다 더 늘려야 하며 집행시기도 대폭 앞당겨야 한다는 주문이다.
지원조건에 대한 수정도 필요하다. IMF의 지원을 받은후 한국 경제가 확실히 나아질 것이라는 것을 대외에 분명히 인식시키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IMF협약에 따른 당초의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이 입증된 만큼 IMF측도 조건 수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초점은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 쌍방간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방향이 될 거라는 의견이 많다. 또 한국 경제의 장래를 위해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기반마저 무너뜨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와함께 우리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보장을 분명히 천명할 필요가 있다.<김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