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7월 14일] 이제 옥쇄파업을 풀어라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가족을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어금니를 깨물며 투쟁의 의지를 더욱 다지고 있을까. 쌍용자동차 해고 노조원들의 옥쇄파업이 50일을 훌쩍 넘어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49재가 끝나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가고 온 나라가 사이버테러와 물난리를 겪는 동안에도 쌍용차의 담장 안과 밖, ‘잘린 직원’과 ‘살아남은 직원’의 대치는 계속되고 있다. '담장 안'의 절박함에는 공감
이러는 사이에 그들의 ‘밥그릇’인 쌍용차의 시동은 꺼져가고 있다. 법원은 법정관리 중인 쌍용차의 관리인에게 노조원들의 공장 점거 파업이 기업 가치 산정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것을 권고했다. 장기파업으로 인해 존속가치가 얼마나 훼손됐는지, 여전히 청산가치에 비해 큰지 알아보라는 뜻이다. 이 같은 주위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담장 안 사람들은 ‘같이 살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그들의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는 섬과 같이 고립된 생활, 한솥밥을 먹으며 형님ㆍ동생 하던 동료에 대한 배신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경찰의 봉쇄로 가족들의 출입과 식품ㆍ의약품 반입마저 자유롭지 못한 데다 공권력 투입에 대한 불안감도 클 것이다. 이런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되면 대형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장기 노노갈등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사태가 해결된다고 해도 많은 사람이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이제 농성을 풀어야 한다. 회사 측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가 억울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담장 너머로 마주 보이는 살아남은 직원들과의 차이를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쌍용차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쌍용차의 숨통을 끊은 주범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는 없다. 지금 상황에서 ‘같이 살자’는 주장은 ‘같이 죽자’는 말과 다름없다. 해고된 사람들 때문에 모든 직원이 일자리를 잃을 수는 없다. 현재 담장 안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은 900여명. 담장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4,600명, 협력업체 인력은 20만명이나 된다. 더 이상 기업의 생존을 볼모로 한 대치는 안 된다. 정부와 채권단, 쌍용차 담장 밖 사람들은 담장 안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옥쇄파업을 풀고 나올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담장 밖 사람들이 한발 더 뒤로 물러나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담장 안 사람들을 압박하는 것은 오히려 사태 해결을 방해한다. ‘담장 안의 사람들을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야 기업이 살고 담장 밖 사람들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놓고 공권력 투입을 위해 정문을 교두보로 확보했다. 하지만 힘으로 그들을 끌어낼 수는 없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 절박하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제시한 ‘마지막 협상안’은 현실적 대안이 안 된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지면 재취업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전제 아래 오는 2012년까지 무급휴가를 하거나 5~8개월치 월급을 받고 명예퇴직을 하거나 협력업체에의 취업주선을 기다려야 한다. 선택이 쉽지 않다. 어느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쌍용차가 경영에 실패한 회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야박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 희망퇴직금은커녕 법으로 보호받는 퇴직금과 월급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기업생존 볼모 대치 더는 안돼
하지만 ‘마지막 협상’은 결렬됐고 시간은 흐르고 있다. 서로 네 탓만을 하는 것은 부질없다. 박영태 관리인이 최근 “구조조정 숫자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출구를 열어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제 노조가 화답해야 한다. 옥쇄파업의 현실은 옥(玉)처럼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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