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위기가 기회이기 위해서는 위기에 대한 인식과 진단이 정확해야 하고 극복대책이 있어야 한다.올해는 지난해 물려받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도약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경제운용계획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97년 경제정책 추진계획에 담긴 내용을 보면 위기의식이 부족하다. 위기에 대한 인식과 진단이 현실과 동떨어지다보니 대책이 안이하다. 과거와 별로 다를게 없고 나열식이다.
올해 경제운영방향의 줄거리는 경제성장률 6%내외 달성, 물가상승률 4.5%, 경상수지적자 1백40억∼1백60억달러다. 저성장을 통해 물가안정과 국제수지 적자개선에 역점을 두기로 한 것이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경제체질을 다지겠다는 뜻이어서 기본방향은 틀리지 않는다. 특히 대통령선거의 해에 일단 정치적인 쓴약을 처방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저성장은 어쩔 수 없이 선택당한 것이며 실천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기는 하염없이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기업의 생산투자는 둔화될대로 둔화돼 있고 경영마인드도 실종된 상태다. 건전한 소비까지 위축돼 있다. 경기의 저점이 어디인지, 올해 회복세로 돌아설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핵심과제 국제수지 개선
여기에 연초부터 파업돌풍이 불고 있다. 총파업 변수에 따라 1·4분기에 성장률이 4%대로 급락할지도 모른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이런 마당이라 성장률은 어쩔 수 없이 낮게 잡을 수밖에 없다.
저성장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실업과 도산의 위험부담이 따를 것이다. 연구기관의 분석대로라면 성장률이 6.5%일 때 실업률은 2.4%로 높아지는데 성장률이 6%이하로 내려가면 대량실업 사태가 빚어질 것이다. 이 사회적 고통을 이겨낼 대비책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정부가 솔선해서 고통을 분담할 자세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현실인식 실천의지 약해
선거철에 정치논리와의 갈등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인기없는 저성장 안정책이 정치권의 부양압력 견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인위적 부양책은 쓰지 않겠다고 하면서 부양성격의 정책을 감춰두고 있는 것만 봐도 선거를 의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면 끝내 경제체질 개선이나 경쟁력강화는 물건너가고 위기구조를 더 깊게 할 뿐이다.
올해 우리경제의 핵심과제는 뭐니뭐니해도 국제수지 적자개선이다. 위기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약화이고 위기의 실체는 경상수지 적자 확대다.
지난해 경상수지 적자는 2백30억달러로 미국 다음으로 세계2위의 적자대국을 기록했다. 사실상의 최대적자국인 것이다. 이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8%로 위험수위 5%에 접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고 허풍을 떨지만 29개 회원국 중 5%를 넘는 나라는 시장경제를 실험하고 있는 체코, 폴란드 뿐이다.
외채도 1천억달러를 넘어섰다. 우리 경제의 모습이 멕시코를 닮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체질이 멕시코와 다르다고 하지만 개방파고에 무대책으로 노출돼 있고 빚얻어 방만하게 살림을 꾸리기는 마찬가지다.
○정치논리 배제 일관성을
멕시코위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비상한 각오와 대책이 필요하다. 강력한 수출정책과 수입감축, 소비억제 전략이 요구되는 때다. 그러나 역시 정부는 낙관적이다. 위기를 위기상황으로 보지 않고 있는 듯하다. 정책의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수출증대책이라는 것이 과거에 수없이 보아왔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수입억제, 과소비억제책이라는 것도 기름값인상이 고작이다.
물론 세계무역기구(WTO)체제와 OECD가입에 따라 정책수단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요행수를 바라며 손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환율, 기술개발 등 가격, 비가격 경쟁력 강화책을 통틀어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기의 진원이 수출부진, 과소비, 경상수지적자 급증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결국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올 1년은 선진경제 진입을 가늠하는 해다. 문민정부 임기 마지막해이기도 하다. 어느모로 보나 중요한 해다. 정책목표가 중요한 만큼 일관성 확보에 성패가 좌우된다. 정치논리를 결연히 배격할 수 있는 실천의지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