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제3세계 경제 약탈, 美가 주도"

경제 저격수의 고백 (존 퍼킨스지음, 황금가지 펴냄)<BR>기업·정부·은행 하나돼 약소국에 압력·횡포<BR>'경제전문가' 이름으로 자행된 경제전쟁 폭로

경제저격수(Economic Hitman)란 컨설턴트 등 개발도상국을 돕는 경제 전문가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훈련을 받고 해당 국가의 부를 미국이 손쉽게 털어내도록 공작을 벌이는 사람을 의미한다. 존 퍼킨스는 개발도상국들이 이 같은 경제 저격수의 마수에 걸려 차관 등을 도입하면 결국 개발 이익이 대부분 미국 기업에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은 한 해 200억달러(약 20조원)기금을 통해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힘을 지닌 곳이다. 184개 국가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이 곳은 현재 제임스 울펀슨 총재가 이끌지만 오는 6월부터는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총재 자리를 이어받아 새 수장 노릇을 하게 된다. 지난 3월말 집행이사회에서 차기 총재에 만장일치로 선출되기는 했지만 울포위츠의 앞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식지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내의 대표적인 신보수주의자로 이라크전을 주도한 그가 후진국의 빈곤퇴치 등 세계은행의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은행이 제 본분보다는 미국의 이해를 우선하는 잿밥에 더 관심을 둘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경제 저격수의 고백’의 저자 존 퍼킨스는 세계은행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경제적 약탈을 일삼는 도구 노릇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미국은 거대기업과 정부, 은행이 삼위일체가 돼 약소국을 상대로 횡포를 일삼는 거대한 ‘기업 정치’(corporatocracy) 체제로 이뤄졌다고 꼬집는다. 이 같은 체제는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재직했던 로버트 맥나마라로부터 비롯됐다. 원래 포드 자동차 사장이었던 맥나마라는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하고 나서 67년 린든 존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됐다. 존 퍼킨스 눈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차기 세계은행 총재로 대표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인 폴 울포위츠 부장관을 지명한 것은 세계은행을 통해 이라크전쟁 이후 제 3세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비춰질 뿐이다. 퍼킨스는 컨설턴트 타이틀을 단 경제 전문가들이 남아메리카, 중동, 아시아 각국에서 미국을 위한 ‘경제 저격수(Economic Hit Man)’ 노릇을 했는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긴 자신이 71년부터 80년까지 10년에 걸쳐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경제 저격수로 활동했으니 이보다 더 생생할 수는 없다. 실제로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지만 경제 저격수는 겉으로는 국제적인 컨설팅 회사의 직원으로 세계를 누비며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계획을 돕는 경제 전문가 노릇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훈련을 받고 미국의 이권이 걸린 나라에 찾아가 그곳의 자원을 미국이 손쉽게 털어내도록 공작을 벌인다.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미국의 이권이 걸린 개발도상국과 산유국에 먼저 들어가 ‘컨설턴트’ 혹은 ‘경제전문가’라는 명함을 내세우며 그 나라의 경제 성장률을 터무니없이 부풀려 예측하고 전력 등 기간 산업개발계획을 세우게 한다. 때로는 개발도상국이 미국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도록 정재계 인사를 매수한다. 개발사업의 계약을 따내는 곳은 벡텔, 할리버튼, 스톤앤드웹스터, 제너럴일렉트릭 등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다. 결국 표적이 된 국가의 부는 미국기업으로 다시 흡수된다. 경제전문가ㆍ컨설턴트라는 가면을 쓴 이들 경제 저격수의 목소리는 미국이 벌이는 은밀한 전쟁의 전주곡이었던 셈이다. 경제 저격수들이 임무에 실패할 경우 ‘자칼’이라고 부르는 미 중앙정보국의 암살자들이 개입하고 만약 이들마저 실패하면 이라크에서처럼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보는 극한의 수단까지 동원한다. 이 책은 70~80년대를 주로 다뤘지만 존 퍼킨스의 날카로운 시선은 2000년대까지 이어진다. 다소 과장된 표현과 음모론적인 시각은 눈에 거슬리지만 70~80년대 세계경제의 흐름을 이해하는 단서를 찾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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