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22일] 이사벨 여왕


이사벨 여왕.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해 에스파냐의 황금기를 연 인물이다. 사상 최고의 벤처 투자가이자 근대 경제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여성으로도 꼽힌다. 초년의 삶은 가시밭길. 1451년 4월22일 이베리아 반도 중앙부를 차지한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로 태어난 그는 3세 때 부왕인 후안 2세를 여읜 뒤부터 견제 속에서 살았다. 감시 속에 눌려 지내던 그의 선택은 정략결혼. 방패막이가 돼줄 배우자로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를 골랐다. 국내외의 방해공작을 뚫고 18세에 한 살 연하의 사촌 페르난도 2세와 결혼한 지 5년 뒤(1474년) 배다른 오빠인 국왕 엔리케 4세가 사망하자 이사벨은 스스로 왕위승계와 아라곤 왕국과의 통합을 선언하며 남편과 공동 군주에 올랐다. 통합국가 에스파냐의 힘은 무서웠다. 내륙국가적 성격이 강한 카스티야와 해양국가 아라곤의 장점이 결합한 덕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년)이 성공한 것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다. 이사벨의 1492년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신대륙 발견에 버금가는 두 가지 사건, 즉 국토회복(레콘키스타)의 완성과 유대인 추방령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베리아 반도에 남은 마지막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 왕국을 내쫓은 레콘키스타로 유럽의 완전 기독교화라는 숙원을 풀었다. 유대인 추방령은 더욱 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에스파냐에서 쫓겨난 유대인 23만명 중 전문인력과 재산가들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ㆍ영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하는 경로가 세계 경제패권의 이동경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사벨 여왕은 오늘날 에스파냐에서 여걸로 기억된다. 17세기까지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에스파냐의 초석을 깔았기에 그럴 만하지만 이교도에게 관용을 베풀었다면 에스파냐의 영광은 더 오래 지속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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