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불안 해소 고통분담 요구/재계전체로 확산 불가피할듯/노동법 개정 지원사격 포석도삼성그룹의 이번 임금동결 조치는 올 임금협상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점과 국회의 노동법개정 재론이 본격화되는 등 미묘한 시점에 발표됐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조가 없는 삼성그룹의 임금조정은 연중 가장 먼저 실시돼왔고 재계 1위그룹이라는 삼성의 비중과 맞물려 그동안 재계의 임금 가이드라인 설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삼성의 이번 임금동결 선언은 불황극복을 위한 재계의 모범답안이자 재계전체로의 확산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최근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최종현회장이 『경제회생에 재계가 앞장서겠다』고 선언한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즉 임금에 관한한 재계를 리드해온 삼성이 「총대」를 멤으로써 나머지 그룹들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겠다는 복선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와관련, 현대·LG·대우·선경 등 주요그룹도 아직 구체적인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검토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삼성은 노동법 재개정에 관계없이 명예퇴직제와 정리해고제를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야당 단일안의 마련 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노동법 개정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지원사격을 하겠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최근 경기악화와 함께 일부 그룹들이 단행한 명예퇴직제의 여파로 「언젠가는 나도 대상이 될 것」이라는 불안심리가 확산돼 왔는데 삼성은 이에 대한 그룹의 입장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꾀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삼성은 이번 임금동결을 먼저 발표함으로써 그룹의 이미지 제고와 함께 임직원의 사기진작을 통한 역량결집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모두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무엇보다도 종업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고용안정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난달 27일 소그룹장회의에서 밝힌 이건희 회장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삼성은 사업구조조정으로 인한 잉여인력이 올해만도 3천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 인력에 대해서는 본인의 전문기능, 직무경험 등을 최대한 배려해 전원 신규사업 등 그룹내 타사업장으로 전배, 재활용할 계획이다.
또 앞으로 각 소그룹·계열사별로 직무전환교육 등을 활성화해 임직원 개개인의 고용 경쟁력을 높여 나가는 한편 그룹차원의 신규사업 추진에 필요한 인적자원도 자체조달한다는 방침이다.
임금동결과 사원복지혜택의 동결 등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풀이된다.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 등에 의한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대신 임직원들에게는 임금이나 복지를 동결하는 「고통분담」을 요구한 것이다.
여기에는 최근 악화되고 있는 회사사정도 감안됐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의 확대와 한보사태 등으로 국제경영여건이 악화돼 삼성과 같은 대기업조차도 현실적으로 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은 어려운 상황. 때문에 삼성은 임금을 몇 % 더 인상해 임직원의 단기적인 환심을 사기보다는 이번 기회를 장기적인 체질강화의 기회로 삼기로 하고 임직원들의 동의를 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용안정과 임금동결을 배경으로 삼성이 추진할 「신생활문화 운동」이 불황타개와 올 임협을 앞둔 재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민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