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푸틴의 절대반지

채수종 <국제부장>

‘러시아 2차대전 승전 기념 60주년 행사’가 지난 9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 행사는 사상유례없는 고유가를 타고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러시아와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자신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행사에는 54개국 국빈들이 참여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등 세계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빠짐없이 한자리에 모였다. 옛 소련의 힘으로도 쉽지 않을 듯한 자리다. 특히 불과 7년 전인 98년 모라토리엄(대외 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기적 같은 일이다. 행사 곳곳에 러시아의 힘이 묻어났지만 행사를 지켜볼수록 의문점이 꼬리를 물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전9시부터 붉은광장에서 각국 정상들을 접견했다. 접견 방식이 독특했다. 각국 정상들은 차례로 푸틴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무려 30m나 되는 거리를 비를 맞고 걸어가야 했다. 푸틴 대통령은 혼자 우산을 쓴 채 기다리다 비를 맞고 온 정상들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푸틴 대통령이 걸어오는 각국 정상들을 외면하고 있다가 코앞까지 와야 비로소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서 맞는 모습이었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황제인 ‘짜르’가 신하를 만나는 장면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왜 푸틴 대통령은 짜르의 흉내를 냈는가. 첫번째 의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산을 접은 것은 단 한번이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날 때뿐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한ㆍ중ㆍ일 등 6개국 정상과 회담을 했지만 각각 10분만을 할애했다. 부시 대통령만 자신의 별장으로 초청해 1시간 동안 환담을 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56년형 흰색 볼가 세단의 운전대를 부시 대통령에게 맡기기도 했다. 볼가 안에서 둘이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마치 미국정도는 돼야 친구로 대할 수 있다는 선언을 하는 것 같았다. 푸틴 대통령의 친밀감 과시는 부시 대통령을 ‘당신’이 아닌 ‘너’라고 부른 대목에서 절정을 이뤘다. 러시아 언론들은 푸틴 대통령이 “최근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는 장면을 TV로 봤다”며 “그때 로라 부시 여사가 당신을 공격했는데 오늘은 우리가 너(부시)를 지켜주겠다”는 농담을 했다고 전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을 향해 농담으로나마 ‘너’라고 부를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럽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승전 60주년 행사에서 또 하나의 기적을 선보였다. 특수 화학약품을 이용해 붉은광장에 내리던 비를 멈추게 한 것. 러시아의 숨겨진 과학기술을 세계 정상들에게 과시했다는 평가다. 행사 하루 전인 8일 모스크바는 날씨가 흐리고 가끔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9일 아침 푸틴 대통령이 군사 퍼레이드에 앞서 각국 정상들을 영접할 때도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하지만 퍼레이드 시작 시간인 10시를 15분 앞둔 9시45분부터 비가 그치면서 햇살이 드러났다. 공군기 11대가 하늘에서 비구름을 흐트러뜨리는 특수 화학약품을 살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의문이 든다. 푸틴 대통령은 왜 좀더 일찍 비를 그치게 하지 않았을까. 비구름을 몰아내는 기술력으로도 시간조절은 어려웠을까. 조금만 시간을 앞당겨 비를 그치게 했으면 초청한 각국 정상들이 부인들과 비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치밀한 계산 아래 각국 정상들과 만나는 시간까지 비가 오도록 놔뒀다가 군사 퍼레이드 시간에 맞춰 비를 그치게 했을까.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지나친 자신감으로 이런 의문점을 제공했다면 불행한 일이다. 푸틴 대통령의 얼굴을 보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이다. 한때 실제로 푸틴 대통령의 얼굴을 본떠서 골룸을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승전행사에서 절대반지(세계 패권)를 얻은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골룸은 절대반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다 결국 용암 속으로 떨어져 죽는다. 모든 의문이 우연의 결과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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