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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1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윤전기를 쌩쌩 돌려 돈을 찍어내겠다"라는 발언을 했다. 엔화 약세를 야기한 '아베노믹스'의 시작이다. 이후 엔화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아베 총리의 윤전기 발언 이전만 하더라도 달러당 70엔 정도이던 엔화 가치는 2013년 5월에는 4년 만에 달러당 100엔까지 떨어졌으며, 작년 12월에는 아베 총리가 조기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2007년 7월 이후 7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20엔을 돌파했다.
일본 정부의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은 한국 경제와 증시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미쳤다. 엔화 약세 시 일본 업체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한 자동차, 기계, 철강 등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현대차의 작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2% 감소한 7조5,500억원에 그쳤으며, 당기순이익은 14.9% 줄어든 7조6,495억원을 기록했다. 비우호적인 환율 여건으로 수익성이 크게 감소했다. 반면 현대차와 경쟁관계인 도요타는 작년 영업이익이 2조2,921억엔으로 전년 대비 73.5%나 성장했으며, 순이익은 89.5% 증가한 1조8,231억엔을 기록했다.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한 반면 일본 기업들은 엔저 수혜로 실적이 크게 개선되면서 일본 증시로도 많은 돈이 몰렸다. 작년 11월4일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007년 10월 이후 7년여 만에 1만7,000선을 돌파했으며, 현재는 1만8,000선에 육박하고 있다. 닛케이225지수는 2013년 한 해 동안 57%나 올랐으며, 작년에는 8% 상승했다.
엔저 심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대호 현대선물 연구원은 "최근 들어 엔화가 다소 조정을 받기는 했지만 최근에 발표된 일본의 경제지표가 좋지 않고 정부 관계자도 양적완화를 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엔저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미국의 달러 강세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달러당 130엔까지 엔화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JP모건·씨티 등 10개 외국계 IB들은 평균적으로 달러당 엔화값이 9월에 125엔까지 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달러당 엔화값이 연말에 132엔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증시도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신환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베노믹스로 인해 기업 실적이 양호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동안 안전자산 비중이 높았던 공적연금(GPIF)이 주식비중을 확대하고 있고, 일본 정부의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에 수급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주식 중에서는 내수주보다는 수출주에 대한 전망이 밝다. 이남룡 상성증권 연구원은 "일본 주식 중에서도 도요타·혼다 등 자동차 관련주들은 엔저가 실적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내수주들은 엔저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수출주 중심의 투자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도 수출 비중이 높은 도요타, 다이킨 인더스트리, 스미토모 중공업 등을 추천했다. NH투자증권은 도요타에 대해 "평균적으로 환율이 1엔 상승할 경우 도요타의 영업이익은 연간 455억엔 증가한다"며 "엔화 약세로 인한 실적 개선 효과가 점차 가시화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요타의 올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4.6% 증가한 26조9,000억엔, 영업이익은 2조7,000억엔으로 19.0%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기계류 제조업체인 다이킨 인더스트리는 수출 비중이 75%로 엔저에 따른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종목이다. 스미토모 중공업도 미국 경기 회복과 엔화 약세로 인한 해외 수요 증가에 따른 실적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 스미토모 중공업은 2015 회계연도 상반기(2014년 4~9월) 매출액은 3,063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2%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190억엔으로 136.9% 성장했다.
이처럼 엔저 수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일본 기업들과는 달리 엔화 약세는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일본 업체와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엔저로 수혜를 볼 수 있는 한국 기업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또 "과거 엔화 부채가 많은 롯데그룹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엔저 기조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점도 사라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