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쥐꼬리 배상' 주민 이중고 우려

■ 태안 원유 유출 사고 일주일<br>정부, 매뉴얼 따라 증거확보등 지도않고 방제에만 골몰<br>오염현상 사라져 손실인정 제대로 못받는 사태 올수도

위성이 찍은 '검은 바다' 원유유출 사고로 광범위하게 오염된 태안 앞바다의 모습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유럽항공우주국(ESA) 위성 앤비셋이 지난 11일 오전 촬영해 14일 공개한 사진에 거대한 기름띠가 조류와 풍랑을 타고 퍼져나가는 모습이 뚜렷하다. /ESA사진

태안 원유유출 사고로 피해를 당한 주민들이 정부의 체계적인 보상 프로세스를 지원 받지 못해 직접적인 생계 타격에 이어 배상까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대로 가면 피해에 비해 쥐꼬리만한 손해배상에 그쳤던 시프린스호 당시의 상황을 답습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유럽 등 선진국처럼 국가적 재난사고와 관련된 대응 프로세스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14일 회계법인ㆍ법무법인ㆍ관계당국 등에 따르면 이번 해상 대량 원유유출 사고 발생 즉시 국가가 나서 손해배상을 위한 프로세스를 짜고 국제보험사나 공제조합의 배상 매뉴얼을 입수해 피해주민 등에게 구체적인 증거 확충을 지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제작업에만 초점을 맞춘 정부의 치밀하지 못한 대응으로 이중의 피해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방제가 실시되면 현장이 사라지고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손실이 인정될 수 없는 배상 시스템을 감안해 방제 초기부터 피해 관련 정보나 자료 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는 주민들의 배상 문제를 정부가 직접 챙겨야 했는데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백승재 한영회계법인 법무실장은 "어민이나 관광 업체들은 정보와 협상력ㆍ자금의 불균형 등으로 피해보상 기관에 비해 대응력이 매우 취약하다“며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증거들이 국가 사회 전체적으로 시스템화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증거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전체 손해배상 프로세스를 짜고 배상기관인 IOPC펀드나 P&I에서 매뉴얼을 입수해 증거가 멸실되기 전에 증거를 확보하고 배상단체를 구성하도록 지도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의 경우 유사 사고 때 어민피해는 물론 숙박업체 임대료 손실, 레스토랑ㆍ해수욕장ㆍ일반상점의 경제적 손실, 관광업 부진에 따른 정부의 수입 감소, 관광진흥 비용까지 수많은 피해에 대한 증거를 확보해 보상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의 사고 대응방식은 너무 즉흥적이고 아마추어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즉 선진국에서는 유출사고 발생 초기부터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 등이 개입해 많은 증거를 확보, 충분한 보상금을 받아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1989년 알래스카 연안에서 발생한 북미 역사상 최악의 사고 엑슨 발데즈호 원유유출 사고 때는 회계법인인 아서앤더슨이 사건 초기부터 개입, 유출회사인 엑슨 발데즈로부터 일반손해배상금 2,652억원(2억8,700만달러)은 물론 2조3,210억원(25억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금 등 총 2조5,862억원을 받아냈다. 원유유출 규모가 3만7,000톤으로 태안의 3배에 이르기는 하나 20여년 전의 물가를 감안하면 적지않은 규모다. 1991년 이탈리아 제노바항 해상에서 1만톤의 원유를 유출한 하벤호 사고 때는 호텔ㆍ레스토랑ㆍ해수욕장ㆍ상점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 아파트 수수료 수입 감소, 광고나 캠페인 비용, 관광업 부진에 따른 주정부 수입 감소, 매스컴 보도로 손해를 본 이미지를 회복시키기 위한 관광진흥비용까지 청구해 3,030만파운드(573억원)를 받아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 여수 앞바다에서 5,000톤가량의 기름을 유출한 시프린스호 사건 때 어업ㆍ관광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735억원을 청구해 고작 154억원을 받는데 그쳤다. 특히 관광업 종사자들의 경우 47억원을 청구, 5억원만을 건지기도 했다. 손해청구액 대비 받아내는 돈의 비율인 손해보상률도 고작 20% 수준으로 선진국의 70%에 턱없이 뒤졌다.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고 발생 8일째인 이날 뒤늦게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6명의 지원단을 현장에 파견해 피해증거를 확보하고 배상 문제와 관련된 상담 및 교육을 실시하며 증거수집 방법 등을 담은 매뉴얼을 주민 등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공익변호를 담당했던 이들이 얼마나 전문적인 노하우를 갖췄고 프로세스를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충남도는 행정자치부에 특별전담팀 구성을 위한 승인을 요청한 지 사흘이 지난 이날 현재까지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아직 현장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증거확보 방법, 배상청구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경우 손해배상대책 관련 조직이 일원화돼 있지 않아 서로 주무책임부서가 아니라고 떠넘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국가적 재난사고 대응 프로세스 부재로 결국 주민들은 손해배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데 필요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막대한 국가적 손실까지 야기하고 있다.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배상 문제에 국가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못하지만 충분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홍보하고 계도하고 지원해주는 게 절실하다"며 "충분한 보상을 받아 국민들의 세금이 덜 들어가고 환경회복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최대한 절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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