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소설가)해마다 명절 때가 되면 가장 고마운 것 중의 하나는 내 고향이 서울이라는 사실이다. 명절이라는 게 즐겁고 기쁘게 여겨지기보다는 성가신 마음이 더 많아진 이후에도, 그나마 고마운 건 귀성전쟁을 치루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명절무렵에 인사를 나눌 때도 상대방의 고향이 어딘가에 따라 인사가 달라진다. 『고생하시겠군요』 하든가, 『다행이네요』 하는 식으로. 물론 가는 길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지라도 고향을 향한 마음만큼이야 얼마나 따뜻할 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몇년전인가, 도로문제 전문가가 2천몇 년이 되면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이 훨씬 더 빠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일까 궁금해하면서도 그가 진단했던 년도를 정확히 기억해두지 않았던 것은 2,000이라는 단어가 주는 비현실감때문이었다. 몇년전이라고 해봤자 90년대 초반이나 중반이었을텐데도 2000년이라는 시기는 아주 먼 훗날의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 2000년이 바로 한해 뒤의 일이고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내년이나 내후년의 도로 사정도 크게 달라질 것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서울부터 부산까지 몇날 며칠을 걸려 걸어가는 수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고향을 향하는 마음이야 다르지 않을 터이다. 귀성 풍경이 달라지지야 않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인구대이동이라는 단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컴퓨터 게임 프로그램 중에 도시를 건설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도로가 건설되지 않는 한, 도시를 아무리 멋있고 근사하게 꾸며놓는다고 하더라도 도시는 움직이지 않는다. 공장도 가동되지 않고 상가의 불빛도 켜지지 않고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명절 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도로를 보면, 꼭 아이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먼저 떠오른다. 이제와서는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소통이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마음이야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되지 않을 것인가. 명절날에도 일터에 남아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꽉 막힌 도로 위를 날라 고향까지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처럼.
그러나 마음이 아닌 현실의 도로는, 과연 문제다 싶다. 평상시에는 잘 뚫리던 도로가 명절 때 하루 정도 불통되는 것만이라면 어느 정도는 낭만적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현대는 시간이 돈이라고 하던데, 현실의 도로야말로 감당이 안되는 마이너스 통장인 듯도 싶다. 귀성전쟁을 치르던 고속도로가 한가해지는 순간, 서울의 도심은 다시 불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