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IMF 10년 한국경제의 좌표는] 위기 과연 끝났나

<제1부> 97년 겨울과 2006년 겨울 <br>"공허한 선진국 타령만…" 리더십 부재가 위기 부른다<br>참여정부 年성장률 4%대…저성장 기조 고착<br>원高·부동산 거품 붕괴등 위험징후 곳곳 감지<br>"시장 친화적으로 경제시스템 업그레이드해야"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99년 11월19일 ‘외환위기를 완전히 이겨냈다’고 선언했다. 정치적 의도로 국민들을 오도한 셈이다. 국민들이 너무 빨리 안심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정부 개혁의 고삐도 늦춰졌다.” IMF 외환위기 초기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외채협상을 주도했던 김용환 전 자민련 부총재의 비판이다. 성급한 낙관론 때문에 구조조정 노력이 실종됐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가 만성적인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벤처 신화의 붕괴, 카드 사태 및 신용 불량자 양산 등의 경제 위기를 2~3년 주기로 반복해오고 있다. 지금도 한국경제는 외부적으로 실력에 걸맞지 않은 원화 강세,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 등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동산 거품을 끌어안고 위태로운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외화내빈의 한국경제=97년 30대 재벌 그룹 가운데 절반가량이 무너졌고 수많은 직장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신(新)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처럼 지난 10년간 한국경제는 피눈물 나는 구조조정을 거친 끝에 지표상으로는 안정을 되찾았다. 97년 말 현재 197억달러에 불과해 국가 부도 위기를 불러왔던 외환보유고는 2006년 11월 말 현재 2,342억달러로 12배나 늘었다. “한국이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할 것”이라는 한국은행발 보도 하나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출렁거릴 정도로 한국의 외환 보유고는 국가적 자부심으로까지 등장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97년 5,164억달러에서 지난해 7,880억 달러로 52.7% 늘었다. 1인당 국민소득(GNI)도 97년 1만1,176달러에서 내년에는 환율하락(원화 강세) 덕분에 2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냥 좋아할 만한 점만 있는 게 아니다. 우선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 제일 우려되는 대목이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5.0%, 4.4%로 잡을 경우 참여정부 집권기의 성적표는 연평균 4.2%에 불과하다. 이는 김영삼 정부 집권기의 7.1%보다 2.9%포인트나 밑돌고 외환위기 직후인 김대중 정부의 4.4%보다도 낮다. 김용환 전 부총재는 “노무현 대통령이 4% 수준 정도의 성장은 괜찮다고 하는데 (선진국에서나 할 수 있는) 엄청난 자기도취”라며 “1인당 국민소득이 1만6,000~1만7,000달러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선진국이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으니 경제가 잘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GDP 순위도 97년 11위에서 지난해 12위로 한계단 떨어졌다. 2004년 인도, 2005년 브라질에 추월당한 데 이어 이대로 가다가는 12위권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1인당 GNI 순위도 97년 29위에서 지난해 30위로 떨어졌다. 1위인 룩셈부르크와 격차는 같은 기간 3만1,560달러에서 4만8,937달러로 1만7,000달러가량 더 벌어졌다. ◇경제위기는 현재진행형=“그럼 그 당시 누가 대통령을 하고 누가 재경원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한국은행 총재 자리에 있었으면 (외환위기를 극복)했겠는가.” 97년 한국은행의 수장이었던 이경식 전 총재의 항변이다. 그는 ‘환란 위기의 주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유배에 가까운 칩거 생활을 해오고 있다. 이 전 총재의 말대로 IMF 위기의 원인을 몇 사람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는 실정이다. OECD 가입의 협상 주역이었던 김중수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는 “외환위기는 기본적으로 금융감독 기능 부실, 경직된 노동시장, 기업 구조조정 지연 등이 결합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IMF 위기는 재앙의 옷을 입고 찾아온 축복”(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 부위원장은 “일본이 10여년간 하지 못해 장기 불황을 초래했던 금융ㆍ노동시장 개혁을 우리는 한순간에 해낼 수 있었다”며 “97년에 외환위기 안 갔다면 2000년에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외환위기는 김영삼 정권 말기의 정책 실수를 감안하더라도 한계점에 이른 한국식 경제개발 모델 자체의 파열음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제2의 경제위기론’이 증폭되면서 우리 경제가 질적 구조조정에 성공했느냐에 대해 의구심이 다시 한번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 10년 전과 비슷한 위기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은 데도 환율은 지나치게 떨어지면서 수출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외채 비율도 올 6월 말 현재 41.3%에 달하면서 외환위기 직전인 50% 정도에 육박하고 있다. 국가 부채와 가계 부채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국가 부채는 참여정부 4년 동안 배 이상 늘면서 97년 60조원에서 올해 283조원에 이른다. 특히 가계 부채는 211조원에서 9월 말 559조원으로 증가했지만 상환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 가격 폭락 때는 도미노식 가계 부도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리더십의 위기가 가장 큰 문제=공허한 ‘선진국’ 타령이 난무하는 것도 10년 전과 비슷하다. 노 대통령은 “2020년 이전에 선진국에 진입하게 될 것”(올해 11월 시정연설)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8월에는 ‘비전 2030’도 내놓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걸맞게 복지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내용의 ‘장미빛 청사진’이다. 국가 부도 위기를 코앞에 둔 97년 6월20일 김영삼 정부가 제시했던 ‘열린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21개 국가 과제’를 연상케 한다. 이때도 주요 키워드가 ‘21세기’ ‘선진국’이었다. 또 YS 정부가 OECD에 가입했듯 참여정부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서두르는 등 임기 내 업적을 남기려는 한건주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참여정부가 일찌감치 힘을 잃으면서 난마처럼 얽힌 문제점을 해결할 리더십마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97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경제 위기는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됐다. 현재 한국의 리더십은 달러보다 더 고갈돼 있다”며 일침을 놓았던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첫 보고서를 내놓았던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이미 한국 경제는 글로벌 경제라서 위험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며 “시장 친화적으로 경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위기는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