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티셔츠는 세계경제 메커니즘 과거·현재를 말한다”

■ 티셔츠의 경제학 (피에트라 리볼리 지음, 다산북스 펴냄)


나 누구게. 티 셔츠. 머 세상에 흔하디 흔한 게 티셔츠지만 무시하지 말고 잘 좀 봐줘. 이래봬도 난 스트리트(street) 패션의 시작과 끝, 말하자면 최신 유행을 이끄는 패션 리더라고. 그뿐인 줄 알아. 내 몸은 세계경제 메커니즘의 과거와 현재를 말해주는 블랙박스라고 할 수 있지. 허풍 떨지 말라고. 이거 괄시가 심하시군. 내 과거 얘기를 듣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걸. 나의 고향은 텍사스야. 내 피와 살이라고 할 수 있는 목화가 생산된 곳이지. 누구는 목화하면 아프리카나 중국이 생각난다고 해. 하지만 아시는지. 지금은 중국에 밀려 2위가 됐지만 미국은 전통적으로 목화 최대 생산국이고, 수출은 여전히 최강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 농장 규모와 단위 면적당 생산량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 지금 막 플로리다 해변 월그린 매장 입구에서 피에트라 리볼리 교수가 쥐어 든 이 몸은 그러니까 텍사스 태생인 거야. 네이티브 스피커 말로 하자면 ‘본 인 더 유ㆍ에스ㆍ에이(Born In The U. S. A)’. 미국이란 나라는 참 묘한 곳이야. 노동 비용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을 보면 목화 산업은 철강ㆍ조선처럼 진작 제 3세계로 넘어갔어야 했지. 그런데도 여전히 세계 목화산업의 메카로 남아있거든. 이유가 뭘까. 누구는 2002년 농업법에 따라 목화 1파운드 당 최소 72.24센트(약 750원) 수입을 보장해주는 미국 정부 지원금 덕택이라고 말하지. 정말 그것 뿐일까? 미국이 200년 이상 목화 종주국 자리를 유지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내 고향 텍사스주 러벅이란 마을을 보자고. 내 주인은 말야 이곳을 ‘목화산업의 실리콘 밸리’라고 했어. 미국에서 재배되는 목화의 25%가 경유한다는 러벅엔 세계 최고 목화 연구기관이 있는 텍사스테크대가 자리잡았지. 대학과 기업들의 엄청난 연구와 후원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쫓아 오기 힘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단 말씀이지. 특히 이곳 목화 농장주들은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자신들이 부담하기 어려운 위험을 정부가 떠맡도록 한단다. 러벅에서 조면기를 거친 목화는 대형 트럭에 실려 인적 없는 네바다와 환상의 캘리포니아 롱비치를 거쳐 이미 짐작했겠지만 중국으로 보내진단다. 그래 이 몸은 결국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이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잔을 받아들여야만 했지. 하긴 좋은 점도 있어. 그 곳에서 고향 친구들을 모두 다시 만날 수 있으니. 그런데 말야. 조지타운대에 다니는 한 여학생은 얼마 전 시위 군중들 앞에서 내 친구를 쥐어 들고는 “베트남과 중국 어린이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불결함과 질병에 시달리며 만든 옷”이라고 ‘골골’ 소리를 내질렀다 하더군. 나이킨지 뭔지 하는 다국적 기업이 제3세계 아동을 착취해 돈을 번다는 얘기야. 하긴 틀린 얘긴 아니지. 하지만 우리 주인은 100% 맞는 얘기도 아니라고 하셔. 리볼리씨는 자유무역이니 경쟁시장을 들먹이며 세계화를 일방적으로 찬미하거나 비방하지도 않아. 그런건 오히려 세계 경제 메커니즘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거야. 노동력 착취공장 조차도 빈곤한 농촌 출신자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자는 거지. 사실 한국이나 홍콩, 타이완을 보면 그런 아픈 과거 역사가 성장 발판이 될 수 있었다는 거야. 마카오 신사의 몸매에 들러 붙은 최고급 양복으로 변신할 거라 기대했던 나는 결국 달랑 그림 한 장 그려진 티셔츠가 돼 고향 땅으로 돌아왔지. 그래도 난 운이 좋은 거라고. 리볼리 교수 손에 선택돼 이렇게 우리 동족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으니. 어떤 친구는 말야. 자기 주인한테 버려져 아프리카 구제 옷 시장으로 팔려 나갔데. 부유한 미국이 공급자가 되고 가난한 아프리카가 수요자가 되는 아이러니는 티셔츠 아니면 찾기 어렵지. 아참. 얼마 전 우리 주인이 책을 썼다는군. 영어로는 ‘The Travels of a T-Shirt in the Global Economy’라는데 한국에선 ‘티셔츠 경제학’이란 섹시한 제목이 붙었더군. 어때 구미가 당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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