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고] 디지털 경제와 화이트 칼라

새천년의 화두는 디지털 경제다. 성능이 크게 개선된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는 가운데 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소위 「디지털 혁명」이 진행중에 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디지털 경제화가 진전되면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시스템의 효율성이 크게 개선됨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하지만 디지털 경제화에 따른 부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특히 일시적으로는 고용 불안감을 확대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디지털 경제화와 관련하여 새로운 분야나 직업이 대두되고 기존 산업의 생산성이 제고되면서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디지털 경제의 진전은 궁극적으로 고용 증대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없어지는 직업도 늘어나게 되는 만큼, 여기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직업에 적응할 수 있기까지는 고용 불안을 피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 경제는 기존 고용을 대체하는 한편으로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신규 고용창출 효과는 고용 대체 효과보다 시차가 길어 다소 늦게 나타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고용 사정이 악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분간 화이트칼라의 고용 불안 문제가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 경제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 기업 내부와 외부의 거래비용이 모두 절감되는데, 특히 내부거래에 비해 외부거래의 비용이 대폭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그에 따라 내부거래를 중시하던 「규모의 경제」나 「범위의 경제」에 대신하여 외부거래 위주의 「네트워크의 경제」가 중요해진다. 또 내부거래의 효율성도 높아져 보다 적은 인력만으로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사업분리나 축소로 비즈니스의 소규모화 경향이 나타나 그간 내부거래를 주로 담당해오던 화이트칼라의 고용이 불안해지는 양상이 출현하게 될 전망이다. 중산층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화이트칼라 중간관리자층의 고용 불안은 곧바로 중산층의 위축 및 사회통합력 약화로 연결되게 된다. 「마라톤 호황」에도 불구하고 「고용없는 성장」을 경험한 바 있던 미국의 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보화투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90년대 전반기에 미국은, 경기 호황에도 불구하고 고용사정이 별로 개선되지 못하였다. 91년 4월부터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그후 15개월간 실업률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평균실업기간도 91년의 13.7주부터 94년에는 18.8주로 장기화되었다. 특히 사무직의 고용 불안 문제가 심각했다. 취업자 중에서 사무직이 점하는 비중이 93년의 15.6%에서 97년에는 14.2%로 줄어들었다. 「고용없는 성장」이 계속되면서 소득격차도 확대되었다. 특히 중산층이 약해졌고 빈곤층의 비율도 계속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다행히 90년대 후반들어 신규 고용 창출 효과가 가시화되면서, 미국은 이제 생산성을 넘어서는 노동비용 증가를 염려해야 할 정도로 고용 사정이 크게 개선되었다. 하지만 한때 경험했던 「고용없는 성장」으로 인해 사회통합력이 약화되는 대가를 치루어야 했음은 물론이다. 실업 대란과 중산층 약화의 고통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디지털 경제의 부작용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시적인 고용 불안에 대한 완충장치로서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효과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다만 사회안전망은 정부도 누차 강조하듯이 시혜적이기보다는 생산적인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정보화의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항상적인 교육이나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특히 고용 불안에 처한 화이트칼라층에게 정보화와 관련된 적절한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능력개발을 지원하여야 한다. 또 정보화 추세에 부응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이들 화이트칼라층과 새로운 일자리를 연결시켜주는 매칭(MATCHIMG)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창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생산적 복지가 아직 「구호성」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런 정책들이 구체화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더구나 「신년사」에 나타난 「생산적」 복지의 내용이 실상은 시혜적인 것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데서 확인되듯이, 경제정책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워지기보다는 총선을 앞두고 즉흥적이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 경제가 우리에게 희망만을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정책 당국자들의 각성과 분투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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