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합리의 역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주인공 존 내시는 "애덤 스미스는 틀렸어!"라고 힘주어 말한다. 시장주의자들이 들으면 불경으로 여길 법한 소리를 당당하게 내뱉은 것이다. 그는 개인이 각자 합리적 선택을 하더라도 그 결과의 합은 사회적으로 이로운 방향이 아닐 수 있다는 내시 균형을 발표해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사회 구성원이 각자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면 사회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는 잘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공범자는 둘 다 범죄 사실을 숨기면 형량이 낮아지는 최선의 결과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범죄를 알려주면 형량을 감해준다는 수사관의 유혹(plea bargaining)에 빠져 둘 다 상대방의 죄를 털어놓음으로써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두 범인은 서로 상대방을 믿지 못해 자신의 형량이 최소화될 수 있는 전략을 취한 것이지만 행위의 합은 각자에게 최선의 결과가 되지 않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업 경영진과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기업 경영진은 임금 동결 등 비용 절감을 추구하고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 복지 개선 등을 요구하는 등 각자가 처한 입장에서 합리적 결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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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결정이 심화되거나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양쪽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자리나 복지를 놓고 발생하는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간 갈등은 물론 지역 갈등, 정치적 갈등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각자의 합리적인(이기적인) 선택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갈등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구성원 간의 신뢰다. 죄수 간, 노사 간, 세대 간 갈등도 신뢰가 있다면 모두에게 유리한 최선의 결과가 가능하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파업률이 가장 높았던 스웨덴이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 자제, 경영진의 납세 확대 합의로 복지국가를 이룩한 것은 좋은 모델이다.

생명보험업계도 고객에 대한 신뢰를 쌓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917억원을 출연해 대학생 학자금 지원, 희귀난치성 환자 지원, 장애인을 위한 특수차량 기증, 공공 어린이집 건립 지원 등의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생보업계의 사회 환원 노력들이 생명보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고객의 신뢰를 눈에 띄게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합리는 거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합리에 앞서 오히려 식상해 보이는 신뢰라는 단어가 우리의 삶에서 더 중요한 가치인 것도 사실이다. 세계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지금 신뢰는 경쟁의 피로에 지친 우리나라가 활용할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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