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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집필 25년…문단 거목 박경리 타계

민족문화의 寶庫 남겨



'토지' 집필 25년…문단 거목 박경리 타계 민족문화의 寶庫 남겨한국전쟁때 남편 사별등 파란만장한 삶토지문화관 설립 후배 예술인들 지원도 강동효 기자 kdhyo@sed.co.kr 출판인 선정 우리나라 대표소설가. 독자들이 뽑은 가장 유력 노벨문학상 후보. 5일 별세한 소설가 박경리(사진)는 그야말로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다. 1926년 10월 28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그는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 통영군청 공무원으로 일하던 김행도(金幸道)씨와 1946년 결혼한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남편과 아들을 잇따라 잃고 딸을 홀로 키우며 파란만장한 20대를 보냈다. 셋방살이를 하며 어렵게 살던 그는 친구의 도움으로 소설가 김동리를 만나게 된다. 박경리의 시를 받아본 김동리는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 "시보다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는 김동리의 조언을 받아 소설을 집필했고 단편 '계산'이 김동리 추천으로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실리게 된다. 이듬해 8월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을 발표했고, 1957년 단편 '불신시대'로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으로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1969년에는 대하소설 '토지'를 현대문학 9월호에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1부를 집필할 무렵 그에게 시련이 잇따라 닥친다. 유방암 선고를 받고 사투를 벌여야 했던 것. 병마를 이겨낸 뒤 사위 김지하 시인의 시국 사건 관련 투옥으로 다시 한 번 마음 고생을 겪는다. 그의 굴곡 많은 생애가 반영된 대하소설 '토지'는 민족문화의 보고(寶庫)로 꼽힌다. 69~94년까지 장장 25년에 걸쳐 5부로 집필된 이 작품은 수많은 방언, 속담, 풍속 등이 담겨 있어 문학적 효용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가 탁월하다. 이름을 가진 인물만 578명이나 등장하며 원고는 약 4만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여러 차례 TV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된 토지는 현대문학의 흐름을 바꿔놓은 대작으로 이후 황석영, 조정래, 최명희 등 다른 작가들의 대하소설에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 받는다. 작가는 등단 초기 주로 개인적인 삶과 밀착된 단편들을 썼다. '불신시대'(1957), '표류도'(1959) 등의 작품이 대표적 사례. 1960년대 이후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존중을 끊임 없이 말했다. 장편 '김약국의 딸들'(1962)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비극을 섬세하게 그렸고 '시장과 전장'(1964)은 전쟁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장편 '파시'(1963) 역시 6.25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상처와 절망을 다뤘다. 흙과 땅을 평생의 보금자리로 여긴 작가는 생명과 환경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1993년 환경운동연합 출범 당시 공동대표를 맡았고 2000년 청계천 복원을 꿈꾸던 학자들로 구성된 '청계천 살리기 연구회'에 참여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그의 계획은 구체화됐다. 하지만 그는 "청계천 복원이 개발 위주로 흘러가는 데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환경 사랑의 뜻을 담아 강원도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설립했다. 토지문화관은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터전 역할을 해왔고 최근에는 소설가 박완서와 은희경, 영화감독 이광모 등 후배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작가는 원주 토지문학관 내 텃밭을 직접 일구며 창작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2003년 현대문학에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건강 악화로 연재 3차례 만에 중단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최근 현대문학 4월 호에 '까치 설', '어머니', '옛날의 그 집' 등 신작시 3편을 8년 여 만에 발표하며 창작 의욕을 밝히기도 했으나 이 세 편의 시가 결국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 됐다. 정부는 작가가 한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문화예술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5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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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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