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 대표의 환영사에 이어 다음은 신입생 대표로 이승호군이 답사를 하겠습니다.』1976년 빡빡머리로 대전 중앙중학교에 입학한 이승호군은 입학식에서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신입생 대표로 불리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더러 갑자기 신입생 대표로 답사를 하라니…』
어리둥절 망설이던 사이 마이크에서 신입생 대표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또 다른 이승호다. 가장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이 날부터 신입생 대표로 앞에 나간 이승호는 「진짜 이승호」, 뒤에 남아 어리둥절하던 이승호는 졸지에 「가짜 이승호」가 됐다.
그는 또다른 이승호처럼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다. 반에서 10등 안팎으로, 눈에 띄지 않는 그저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이 지나가면서 던진 한 마디는 평범했지만 당시 사춘기였던 그에게 적잖은 질투심을 불러 일으켰다. 『3반 이승호는 저렇게 잘 하는데…』
이 때부터 그는 또다른 이승호를 따라잡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성적이 금방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졸업할 무렵 한두 번 반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 관계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충남고등학교에 나란히 입학한 것이다. 두 이승호는 중·고등학교 6년동안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도 없었고, 둘이 특별히 마주친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둘은 같은 이름 때문에 「진짜 이승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자존심을 숨기며 경쟁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그는 반에서 1등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자 담임 선생은 『우리 반에서도 전교 1등이 나와야지』하며 틈틈이 그를 격려했다.
가정 방문으로 그의 집을 찾았던 담임 선생은 깜짝 놀랐다. 어릴 적에 일찌감치 아버지를 여읜 뒤, 작은 포장마차로 생계를 꾸리는 홀어머니를 돕는 그를 본 것이다.
담임 선생은 포장마차에 붙어 있는 작은 방에서 여동생과 함께 홀어머니를 도우며 사는 그에게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학교 도서관에 남아서 공부할 것을 권하면서 어머니를 설득했다.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남아 공부하던 그는 드디어 「진짜」와 「가짜」의 관계를 역전시켰다. 전교 1등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 198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그를 두고 고등학교 동기들은 아무도 「가짜」라고 부르지 않았다.【허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