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일각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붕괴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유로존이 무너질 경우 앞으로 2년간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 2011년 대비 12%나 감소해 약 1조유로가 증발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는 독일 재무부, 크레디트스위스, UBS, ING 등의 보고서를 종합해 이같이 보도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유로존은 붕괴 이후 5년이 지나도 이전의 GDP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독일이 유로본드(유로존 공동채권) 도입 등에 대해 강경 반대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위기해법 도출에 난항을 겪으면서 유로존이 결국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확산되고 있다.
ING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로존이 해체될 경우 가장 큰 피해국은 역시 그리스로 2년간 GDP는 15.4% 줄어든 반면 실업률과 물가는 각각 23.8%, 18.6%나 폭등할 것으로 예상됐다. 스페인도 GDP는 11% 쪼그라들고 실업률은 26.7%, 물가는 12.9%나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도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독일 재무부의 내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로존 붕괴 후 1년이 지나면 독일 GDP는 10% 가까이 수축되고 실업자 또한 현재의 두 배인 5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위스 UBS는 이보다 심한 GDP의 4분의1이 증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익명의 독일 재무부의 한 관계자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시나리오는) 독일이 유로존을 구제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은행권의 손실도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이른바 피그스(PIIGSㆍ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아일랜드ㆍ그리스ㆍ스페인) 5개국만 유로존을 탈퇴해도 유럽 전역 29개 대형은행들이 입을 손실만 4,100억유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유로존의 상황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유로존 회원국인 키프로스가 이날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 신청 계획을 밝혀 유로존 내 5번째 구제금융 신청 국가가 됐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피치도 키프로스의 국가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정크) 등급인 'BB+'로 하향 조정했다.
역내 최고 안전자산으로 불리던 독일의 신용도 점차 흔들리고 있다.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 국채의 부도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000만달러 규모일 때 지난 3월 말 7만5,000달러에서 이날 10만1,000달러로 35%나 치솟았다.
이처럼 유로존 붕괴 가능성이 나오고 있지만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지루한 줄다리기로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프랑스ㆍ이탈리아 등이 요구하고 있는) 유로채권이나 채무 공동보증은 경제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며 재정통합이 선행돼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런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오는 29~30일 벨기에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 쏠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 EU 정상회의에서 ▦재정통합 ▦은행동맹 ▦채무 공동변제기금 설치 ▦성장 패키지 도입 등이 집중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주요 외신들은 이런 의제가 이번 회의에서 모두 타결될 가능성은 낮다며 10월이나 12월로 예정된 정례 정상회의를 또다시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억만장자인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은 25일 "EU 정상회의에서 공동부채기금 도입을 시작하지 않으면 유로존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에릭 넬슨 유니크레디트 수석 연구원도 "유럽은 벼랑 끝에 서 있으며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시간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득갑 유럽경제 전문위원 역시 "시장은 유럽위기를 타개할 '한방'을 원하지만 독일과 회원국 간 갈등은 첨예해 이번 EU 회의는 성장 패키지나 은행동맹에 합의하는 선에서 막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경우 시장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어 다시 한번 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