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위기 다시 힘모으자] (5) 금융시스템 복원시급
금융계 스스로 개혁… 시장 투명성 높여야
실물경제를 살리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금융시스템을 복원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금융계가 함께 노력해야 하며 특히 당사자인 금융계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시급히 완결돼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금융자율화가 정착되지 않는 다면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역할을 제한하게 되고 자연히 시장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금융구조조정과 동시에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권한과 책임을 보다 분명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그동안 각종 자금운용 과정에서 정부의 권유나 상황에 의해 책임아닌 책임을 지게 된 금융기관 종사자들에 대한 '대사면'을 단행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죄인'이 된 수많은 금융인들이 지금도 몸을 움추린채 구조조정의 외곽에서 체념과 방관으로 소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소리도 없지 않으나 오히려 불법ㆍ탈법과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책임소재를 보다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사실 97년말 '환란'이후 3년간 금융계는 수만명이 거리로 내몰리고 은행을 포함해 수백여 개 금융기관이 문을 닫는 등 어느 분야보다 구조조정의 상처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구조조정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타율'과 '강제'의 고리를 벗어던지지 못한 탓이 크다.
돌이켜 보면 금융계는 늘 수동적이었다. 위기에 몰리면 정부가 지도에 나서고, 그것으로 안되면 일정한 기준을 정해 미달하는 금융기관을 퇴출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 됐다. 그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은 항상 몸을 움추리고 피해다녔다.
일례로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사활을 가름하는 기준으로 부상하자, 우량ㆍ부실은행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3년 내내 숫자맞추기에만 매달려왔다.
운용할 곳도 마땅치 않은 후순위채를 매년 수천억씩 발행하고 구걸하다시피 외자를 유치해 '비율'을 충족시키는 게 고작일 뿐, 천편일률의 '수비대열'에서 이탈해 새로운 시도에 나선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해 거액의 결손을 감수하고 충분히 대손 충당금을 적립한 주택은행의 시도가 그나마 파격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우리 금융계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증이기도 하다.
대다수 은행들의 해를 넘긴 충당금(부실대출로 인한)부족액은 결국 지난 6월 '잠재부실'에 대한 당국의 특검으로 이어져 해외투자자들의 의심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됐다.
양파껍질과도 같은 부실 덩어리는 은행뿐 아니라 종금, 보험, 신용금고를 막론하고 모든 금융업종이 다를 바 없다. 여러 겹을 벗겨냈지만 끊임없이 드러난다. 적당히 감추다가 다시 위기에 몰리고, 재탕 삼탕 구조조정이 되풀이된다.
아르헨티나ㆍ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금융투명성이 낮게 평가되는 이유도 이처럼 방어적ㆍ수세적인 개혁성향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감추고 미루며 그저 단기적인 생존에만 매달린 결과다.
정부와 직원(노조)들 사이에 끼어 눈치보기로 일관하거나 인기에 영합하는 금융기관 경영자들의 소신없는 포퓰리즘(Populism)도 그 자체로 개혁의 대상이다. '이렇게 해야 살 수 있다'는 총론을 인정하면서도, 과감히 칼을 들이댄 용기있는 경영자가 없었다. 늘 양쪽의 비위를 맞추다보니 피곤하기만 하고 성과는 없다. 금융지주회사 통합이나 합병이 지지부진한 채 이해당사자간 대립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와서 금융기관의 자발적인 구조조정 의지를 새삼 강조되는 것은 내핍의 강도를 높이자는 취지가 아니다. 수동적인 금융구조조정은 실물경제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몸을 잔뜩 움추린 금융기관들이 돈줄을 끊은 채 전전긍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건실한 기업들도 위기에 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피하고 도망다니다가 억지로 끌려가는 구조조정이 되풀이 된다면 그로 인한 후유증은 금융계뿐 아니라 경제 전체에 큰 짐이 될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성화용기자
입력시간 2000/12/0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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