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 일대 수송동·청진동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30년이 넘도록 꿋꿋이 한자리를 지키며 세월의 흔적을 비켜간 빌딩이 있다. 바로 말에게 이롭다는 뜻을 가진 '이마(利馬)빌딩'이다. 이마빌딩은 광화문 일대에서 교보생명빌딩과 함께 가장 오래된 건물로 꼽힌다.
김수근씨에게 수학한 건축가 홍순학씨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마빌딩은 과거 경향신문 사주였던 이준구씨가 1983년에 지은 빌딩이다.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146-1번지 광화문 세종로 미국대사관 뒤편에 위치한 이마빌딩은 지상 15층, 지하 4층 규모로 경복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뛰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빌딩이기도 하다.
이마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빌딩이 들어선 자리가 말과 관련이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때는 왕이 타는 말을 관리하던 관청이 있었던 곳이며 일제시대 때는 일본군마대가 주둔했던 자리다. 또 해방 직후에는 서울시경 기마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마빌딩이 유명한 것은 단지 오래된 건물이라서가 아니다.
이마빌딩은 입주사들이 사랑하는 빌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종의 '명당터'다. 이곳을 거쳐 간 입주사들의 사업이 크게 번창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내 1위의 회계법인인 삼일PwC는 현재 본사인 LS 용산타워로 옮기기 전까지 이마빌딩에서 기반을 닦았다. 코카콜라·ING생명 등 외국계 기업들도 이마빌딩에서 크게 성장했다.
입주 후 30년이 넘도록 방을 빼지 않은 회사도 있다.
삼선로직스는 1984년 이마빌딩에 입주해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사이 사무실 면적은 크게 넓어졌으며 매출액도 급성장했다. 입주 당시 삼선로직스는 145㎡를 사용했으나 현재는 10배가 넘는 1,653㎡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지하 식당가 일본식 분식 전문점 '동경암'은 한때 이마빌딩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최경섭 이마산업 임대업무팀 팀장은 "최근 주변에 새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이마빌딩을 찾는 기업들이 많아 자연발생공실률 3~4%를 제외하면 빈 공간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임으로 고생하던 한 입주사 대표는 입주 후 아기가 생겼고 또 다른 입주사 대표는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기록하는 등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덧붙였다.
이마빌딩에 입주한 기관이나 기업 중 유일하게 꼽히는 실패 사례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이 전 총재는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이마빌딩에 대선캠프를 차렸으나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가 불거지며 패배한 바 있다.
설계 측면에서도 이마빌딩은 오래된 건물답지 않은 세련미를 자랑한다.
필명 오기사로 유명한 건축가 오영욱씨는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라는 책에서 이마빌딩에 대해 "입구 캐노피는 무거운 철 구조물이 경쾌하게 날렵한 형태로 공중으로 뻗어 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최 팀장도 "이마빌딩은 기둥이 없기 때문에 다른 건물에 비해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며 "실제 전용률이 67%로 일반적인 빌딩(50% 초중반 수준)보다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색깔의 매력을 지닌 이마빌딩은 지금도 내로라하는 기관과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1층에는 2011년 6월 스타벅스가 400호점을 냈으며 미국대사관, 일본대사관 영사부, 아일랜드대사관 등 외국 기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국민안전처 등 정부기관, 그리고 외환은행·삼선로직스 등 국내 기관들이 입주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