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3월 6일] 기다려야 꽃이 핀다

몇 해 전 집에서 키우던 선인장을 죽인 일이 있다. '잘 키워 빨리 꽃을 피우리라'는 성급함 탓에 필요 이상으로 물을 준 게 화근이었다. 집에 가져오기 전까지만 해도 생기 있던 선인장은 집에 가져온 지 한 달도 안돼 뿌리가 썩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두고 스스로 양분을 쌓으며 자랄 수 있도록 기다려줬어야 했지만 '빨리 성과를 보겠다'는 욕심이 일을 그르친 셈이었다. 지난 3~5일 제주도에서 각 대학 입학사정관이 모인 가운데 열린 '대학입학사정관제 사례 발표 워크숍'을 보는 내내 나의 성급함 때문에 비명횡사한 선인장이 떠올랐다. 워크숍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만난 일부 입학사정관들은 "정부의 추진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한 사정관은 "안 좋은 제도를 학교들이 정부 지원만 보고 시행할 리는 없다"면서도 "좋은 제도도 적절한 속도로 피드백을 하며 키워나가야 하는 게 아니겠느냐.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마음만 급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생의 산술적 교과 성적 외에 성장배경과 잠재적 능력을 종합 평가해 선발함으로써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생겼다. 그런데 성장배경과 잠재적 능력의 객관적 평가 기준이 없고, 그렇다 보니 학교 측이 다각도로 검토ㆍ감독을 강화해도 과도한 스펙 쌓기 열풍이나 위조 증빙서류 제출 논란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현장의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0학년도 입시에서 97개교 모집인원의 6.5%인 2만622명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 데 이어 오는 2011학년도 입시에서도 118개교에서 모집인원의 10%인 3만7,628명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에는 100%에 가까운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 선발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제도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폐해를 보완할 '치료기' 혹은 '재활기'는 초스피드 정책 운영 속에 사라졌다. 빨리 꽃을 피우라며 과도하게 물을 주고 수시로 줄기를 잡아당긴다면 화초는 죽을 수밖에 없다. '속도전'으로 부작용에 시달리는 입학사정관제에도 필요한 잠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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