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한미 FTA의 속살

지난주 말 서울 도심에서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저지하자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제2의 개항이라고 불리는 한ㆍ미 FTA의 앞날이 결코 평탄하지 못할 것임을 웅변해주는 사건이었다. 한ㆍ미 FTA는 우려했던 대로 이념 논쟁의 길로 이미 들어섰다. 반대론자들은 ‘한ㆍ미 FTA는 노무현 정권의 자살골’ ‘제2의 을사늑약’ 등 온갖 자극적인 문구로 임전무퇴의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그곳에서 제대로 된 경제논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감성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당위성만 주장 국민 설득못해 시위 현장에서 정재돈 농수축산 공대위원장은 “한ㆍ미 FTA 저지 투쟁은 모든 지역과 모든 부문을 하나로 만들어 대치 전선을 분명히 해줬다”며 한ㆍ미 FTA에 의미를 부여했다. 적과 아군을 분명히 해서 전선을 확정하는 데 한ㆍ미 FTA가 더할 나위 없는 역할을 해줘 반갑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시위대가 지나간 거리는 참여정부에 대한 욕설을 담은 낙서들로 가득했다. 그렇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게 된 데 과연 정부 여당의 책임은 없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 참여정부의 고위관계자들은 입만 열면 ‘한ㆍ미 FTA를 통해 서비스 등 취약 부문을 발전시킬 수 있다’ 또는 ‘개방 안하고 살 수 있느냐’는 지극히 선언적인 문구만으로 FTA의 당위성을 주장해왔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이러저러한 이익이 나올 수 있고, 어떤 분야는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맞춤형 해법까지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사회를 통째로 바꿔놓는다는 대협상을 앞에 두고 국책 연구기관을 통해 나온 수치마저 이랬다저랬다하며 사람들의 불신을 부추기는 등 너무 많은 허점을 보여서는 안될 일이다. 한ㆍ미 FTA를 꼭 실현시키고 싶다면 그를 통해 대한민국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어느 정도까지는 심어줄 필요성이 전략적으로 절실했다. 꼭 전국민을 설득하기는 힘들더라도 확실한 우군을 보다 많이 확보하는 전술도 중요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왼쪽에 서 있는 사람들 못지않게 단순하게 FTA 문제에 접근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한ㆍ미 FTA가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을 짐작하고 지레 겁을 먹은 나머지 될 수 있으면 이슈화를 막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바로 그 때문에 정부와 민간 사이에 의사소통의 길이 막혀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여러 차례 한ㆍ미 FTA 관련 워크숍이 준비돼 있다는 소식이 있지만 비보도, 또는 비공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로 만나지 않고서야 일이 제대로 풀릴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다. 서울경제신문이 한ㆍ미 FTA와 관련해서 협상 준비 과정과 한ㆍ미 양국의 전략, 여러 가지 비공개 문건 등을 들춰내는 형식으로 시리즈 기사를 30회가량 지속하자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청와대ㆍ재정경제부ㆍ외교통상부는 물론 국책 연구기관의 고위관계자들은 기자를 만날 때마다 ‘서울경제의 입장은 도대체 뭐냐’ ‘FTA를 하자는 것이냐 말자는 것이냐’ ‘믿었던 경제신문이 그럴 수 있느냐’ 등 여러 가지 불만을 쏟아냈다. '경제업그레이드' 확신 심어줘야 서울경제는 시리즈 기사에서 한번도 한ㆍ미 FTA에 대한 찬반을 분명하게 밝힌 적이 없다. 단지 국민들이 제대로 모르고 있는 부문을 정보 공개 차원에서 취재해 기사화하고 대안을 모색했을 뿐이다. 그리고 뭘 알아야 찬성이고 반대를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게 아닌가. 가령 ‘한ㆍ미 FTA가 한국사회를 통째로 바꾼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가면 “너무 자극적이다”며 불만을 내놓는 관계자들이 기자와 만난 사석에서 한ㆍ미 FTA의 당위성을 설명할 때는 “이번 기회에 한국사회를 한번 확 바꿔야 생존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한ㆍ미 FTA와 관련된 논란을 지켜보며 답답한 것은 본능적으로 반대 목소리만 내는 농민단체나 영화인들만은 아니었다. FTA를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 관계자들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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