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이지만 격투기 종목의 국제시합 구경을 갔다가 외국 선수에게 진 우리 선수가 경기장 뒤뜰에서 코치나 감독인 듯 한 사람에게 심하게 폭행 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일이 있다. 체육계 사정을 잘 아는 인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렇게 하지 않고는 선수들을 다룰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 일 이래로 승리한 운동선수들의 화려한 모습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이력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폭행과 린치의 음습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런데 월드컵 축구중계를 지켜보면서 인식이 바뀌었다. 게임이 승리로 끝날 때마다 우리 선수들이 감독의 품으로 뛰어들어 얼싸안는 모습에는 폭행이나 린치의 그림자 대신 사랑과 믿음이 넘치는 듯 했다. 감동마저 주었다. 사람들이 왜 히딩크를 명감독이라고 부르는지도 알 듯 했다. 그처럼 선수들과 어우러지는 히딩크 감독의 모습을 떠올리면 중국 전국시대 초기의 명장이며 병법가였던 오기(吳起)가 생각난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을 느끼기 때문인 듯 하다. 오기는 전쟁터에서는 병졸과 침식을 같이 하고 짐을 나누어지며 종기로 고생하는 병사가 있으면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다 한다. 이에 감동한 부하 장졸들이 싸움에 생명을 아끼지 않음으로서 오기는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오기가 훌륭한 인격자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욕심 많고 지나치게 여색을 밝혔으며 출세를 위해 부인을 죽이기까지 한 패륜아로 그려지고 있다. 병사들과 고락을 같이 한 것도 전쟁전문가로서의 지략이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여기서 히딩크의 인품까지 얘기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기의 그것과 비교하자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그는 어디까지나 돈을 벌기 위해 이 나라에 왔다는 사실이다. 남북축구 때 잠시 다녀가면서도 적지 않은 소득을 올렸다는 보도다. 그가 이룩한 성과에 대해 응분의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가 이 땅에 오래도록 큰 그늘을 드리울수록 우리 내부에서 자라야 할 인재의 성장이 더뎌지거나 아예 고사하는 일은 없을지도 살펴야 할 것이다. 신성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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