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22일] <1249> 린쩌쉬


린쩌쉬(林則徐). 중국인들에게 ‘구국의 영웅’으로 각인돼 있는 인물이다. 1785년 빈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과거시험을 거친 그는 초급관리 시절부터 청렴결백으로 유명해 ‘임청천(林靑天)’으로 불렸다. ‘푸른 하늘처럼 공명정대’하다는 뜻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아편전쟁. 43세에 아편무역을 단속하는 흠차대신(전권대신)에 임명된 뒤 내부적으로는 금연령을, 국내외 무역상에게는 아편무역 금지령와 몰수령을 내렸다. 영국 상인들은 저항했지만 생필품 공급을 끊으며 압박하는 린쩌쉬에게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1,359톤에 달하는 아편을 몰수한 그는 1839년 4월 중국 근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인 호문소연(虎門銷煙)을 단행했다. 몰수한 아편 전량을 태우거나 파묻고 바다에 버린 것이다. 린저쒸의 정의로운 몰수는 영국의 탐욕과 정면으로 부닥쳤다. 아편상인들의 로비를 받은 영국 의회는 1840년 4월 271대262라는 근소한 차이로 아편전쟁을 결의했다. 청은 영국의 상대가 못됐다. 전쟁은 청의 일방적 패배와 홍콩 할양, 추가 개항을 약속한 난징조약 체결로 이어졌다. 영국은 왜 부도덕한 전쟁을 강행했을까. 경제적 이유가 깔려 있다. 중국산 차(茶) 수입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를 메우려면 아편을 파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편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추방된 린쩌쉬는 은거 중 서양 서적을 번역해 청의 근대화정책인 양무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복권과 퇴임을 거쳐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 흠차대신에 임명돼 전장으로 떠나던 중 1850년 11월22일 길에서 병사했다. 향년 65세. 백성의 건강과 나라의 경제를 위해 전력했던 린쩌쉬는 근대 중국 자존심의 상징이다. 초강대국을 향해 전진하는 중국의 호흡에는 그의 숨결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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