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노사정위 4년만에 식물기구화 … 임금체계 개편 표류하나

[노·정관계 급속 악화]

한국노총도 정부 성토 "노동계 전체를 탄압"

노동현안 논의 지연땐 내년 임단협 큰 혼란… 산업 전반 파장 우려


정부가 지난 22일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에 공권력을 투입한 뒤부터 노정관계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당장 민주노총은 오는 28일 총파업을 예고했고 한국노총도 정부를 강력히 규탄했다. 임금제도 개편이나 장시간 근로개선 등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숙제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노정 불화로 민생 현안이 표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23일 서울 중구 본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진입과 철도노조에 대한 탄압은 전체 노동자와 민주노조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28일 총파업의 날 대규모 조합원과 국민이 함께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며 강경한 투쟁 의지를 밝혔다. 신 위원장은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고 체포영장만으로 민주노총 건물에 진입할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었다"며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산별연대 대표 등도 이 자리에서 전날 경찰의 공권력 행사를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전국확대간부 파업에 나서고 26일 전국 지역별 결의대회를 한 뒤 28일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또 매일 촛불집회를 여는 등 대규모 선전전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양대 노총의 또 다른 축인 한국노총도 정부를 성토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노정 관계를 대화가 아닌 공권력으로 해결하는 게 현 정부의 수준이라면 모든 노동계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며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와 노정 대화에 성실히 나설 것을 요구했다. 또 한국노총은 "긴급 대표자 회의를 열어 중대결심을 할 것"이라며 강력한 후속 대응 방침을 예고했다. 김동만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노동계 전체에 대한 탄압으로 보고 있다"며 "정부는 공권력을 행사하기 전에 철도노조에 민영화가 아니라는 신뢰를 주는 노력을 더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도 이날 오전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철도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사회적 대화에 당장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현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정부에 지속적으로 대화를 요구했지만 연거푸 거부당했다"며 "사회적 대화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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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의 파업에서 비롯된 이번 사태가 '노총 대 정부'의 갈등 구조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이 불똥은 임금제도 개편이나 장시간 근로 개선 등 고용노동 분야 주요 현안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노동계와 산업계·정부는 지난 18일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내년 초 대화 기구를 출범시키기로 했으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준비작업을 시작한 상태다. 또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에 따른 대응 등도 노사정위에서 다뤄지는 등 노정이 함께 논의해야 할 주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노정관계가 더 나빠진다면 이 같은 사회적 대화가 모두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노사정위에 불참해 온 민주노총은 제외하더라도 지금까지 노측 입장을 대변한 한국노총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강경 대응에 나선다면 원만한 노정 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임금제도 개편 기준 마련이 지연될수록 내년 전국 각 사업장에서 진행될 임금단체협약이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철도노조 파업의 여파가 전체 산업현장으로 번지는 셈이다.

노사정위와 정부는 잔뜩 긴장한 채 이번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노사정위원회의 경우 지난 정부 내내 '식물 위원회'라는 오명을 얻을 정도로 자기 역할을 못해오다 새 정부 들어 각종 의제별·업종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제 기능을 찾아간다는 기대에 차 있었던 터라 이번 상황에 더욱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최영기 노사정위 상임위원은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진입은 노동계 전체에 대한 강경 대응이 아닌 철도노조 파업의 장기화를 막으려는 고육지책이지만 결과적으로 사태가 심각해졌다"고 우려한 뒤 "임금체계 개편이나 근로시간 단축 같은 이슈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이고 철도노조 문제와는 별개인 만큼 대화는 대화대로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도 "(경찰의 민주노총 진입은) 민주노총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철도노조 문제 해결이 목적"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 "실무 단계에서 노총과의 의견 교환을 꾸준히 해나가며 이번 사태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민주노총 총파업이 주말(28일)에 잡혀 있는 만큼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이 민주노총 본부 진입을 강행하면서까지 검거하려고 했던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등 지도부는 모두 피신했다고 철도노조 측은 밝혔다. 김재길 철도노조 정책실장은 이날 민주노총이 연 기자회견에서 "모든 지도부의 활동은 계속될 것이고 실무적인 집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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