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19일 내놓은 시설투자 활성화 방안은 지난 16일 회장단회의의 후속탄이다. 경제 난국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가 핵심인데, 정부가 기업을 둘러싼 족쇄를 풀지 않으면 투자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투자를 무기로 한 고강도 압박인 셈이다.
하지만 노무현대통령이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없다`고 못박은 데서 볼 수 있듯,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정부와 재계의 해법에는 여전히 괴리가 크고, 앞으로도 규제완화와 경기 부양의 강도를 놓고 상당기간 논란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다.
◇설비 투자, 회복기미가 없다= 전경련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를 보면 하반기 설비투자가 회복할 것이라는 응답은 17.9%에 불과했다. 내년 상반기가 36%, 회복시기를 점칠 수 없다는 응답도 20.8%나 됐다.
투자의욕 부진은 실제 투자액에서 확인되고 있다. 올해 기업들이 52조5,000억원의 설비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실제 집행률은 40%에 불과했다.
투자 양극화 현상도 깊어지고 있다. 매출액 1조원 이상 대규모 기업의 집행률은 40.7%였지만, 그 이하인 중견기업은 36.1%에 그쳤다. 투자 계획에서도 4대 그룹은 지난해보다 33.6%가 증가한 반면, 5~13대그룹은 7%가 도리어 줄었다.
설비투자 부진→수출 부진 및 소비 감소, 고용 불안→성장률 저하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단의 투자 촉진책을 달라`= 전경련은 현 추세대로라면 연간 투자집행 규모가 지난해보다 20%나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전례 없이
▲재정ㆍ소비
▲금융ㆍ세제
▲규제완화
▲노사관계 등 40개 항목에 달하는 투자 유인책을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다.
재계는 우선
▲계좌 추적권 연장 불허
▲노사 로드맵 개선
▲집단소송제 남소 방지 장치 등을 거듭 촉구했다. 법인세율을 매년 1%씩 내리고, 조세특례 일몰시한을 오는 2006년말까지 연장해주는 등 획기적인 세제 지원책도 촉구했다.
세부적인 경기 부양방안도 내놓았다. 2차 추경 규모는 6조3,000억원으로 제시하고, 금융기관의 여신 확대 등 기업으로 돈이 흐르게 하기 위한 처방을 담았다.
소비 촉진 방안에서는 일단 소비여력이 있는 중상류 계층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골프장 추가 마련과 에어컨ㆍ자동차의 특별소비세 폐지 등이 모두 담겼다.
◇정부의 지원 의지는 제한적= 윤진식 산자부 장관은 30대 그룹 기조실장과 만난 자리에서 다양한 투자 촉진책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재탕ㆍ삼탕에 불과했다. 민관 공동의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로 한게 새롭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계좌추적권 연장 폐지 주장 등도 얼마나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이건희 삼성회장조차 전경련의 보고를 받은뒤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경기 부양책들도 마찬가지다. 정부내에서도 재경부와 공정위간에 개혁과 부양 방안 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A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재계 스스로도 투자안의 현실성은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정부가 리더십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로 기업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임석훈기자,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