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광복 60년 을사늑약 100년 한일수교 40년] 분열·갈등 접고 동북아중심국으로 가자

2005년 한반도정세 20세기초·해방직후와 흡사<br>美·中·日 외교 각축전…냉철한 현실인식 절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인 1905년은 우리 민족에게 비운의 해였다. 일본은 그해 미국 및 영국과 각각 ‘가쓰라ㆍ태프트 밀약’, 동맹조약을 맺고 한국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인정받았다. 물론 일본은 러시아와 중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둬 아시아의 신흥 맹주로 자리잡았다. 같은 해 11월, 일본의 추밀원(樞密院) 의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조선의 대신들을 상대로 갖은 회유와 협박 끝에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개화냐 쇄국이냐를 놓고 집권층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일찌감치 힘을 키운 일본의 무력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역사를 무참하게 짓이겨버렸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된 후 40년이 지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기다리던 해방을 맞았지만 이번엔 또다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통치 결정으로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분단이라는 쓰라린 상처를 안은 채 허리가 잘리고 말았다. 해방 60년을 맞은 지금에도 남북대치상황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세계의 눈과 귀는 온통 한반도에 쏠리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일제 강점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2005년 새해, 한반도의 모습은 바로 20세기초 민족의 주권이 흔들렸던 시기나 해방 직후와 엇비슷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요동치는 국제 정세는 우리에게 자주강국과 능수능란한 외교력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게 만들고 있다. 사실 한반도의 근현대사는 주변 강대국과 미국의 주도권 싸움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암투의 역사는 북핵문제의 해법을 놓고 중대 갈림길에 서있는 2005년과 놀라우리만큼 흡사하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주변국들의 면면이나 복잡한 합종연횡 구도를 들여다보면 한반도 지배권을 얻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던 1세기 전을 연상하게 만든다. 또 개화 여부를 둘러싸고 지도층이 분열되고 집권층마저 뚜렷한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 채 명분 싸움에만 매달렸던 옛날이나 ‘친미ㆍ반미’ 및 이념논쟁과 세계화 논란으로 들끓고 있는 21세기 초의 한반도는 역사의 시계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지도세력이 비전과 실력을 갖추고 국민들을 제대로 이끌어가기는 커녕 분열과 갈등으로 몰고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구한말 집권 세력은 일본과 달리 부국강병의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나라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냉혹한 국제 정세에 안이하게 대처한 결과는 엄청난 시련과 좌절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여야 정치권이 아직도 과거사에 파묻혀 100년 전의 역사를 파헤치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오는 17일 공개를 앞둔 한일협정문서들 둘러싸고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것도 우리가 아직도 100년 전의 수준에 맴돌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2005년 한반도의 외교ㆍ안보정세는 그 어느 해보다 엄중하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성세는 우리의 진로가 과거 주변 강대국들의 뜻에 좌우됐다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절대강자로서 한반도의 무대에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다. 부시 행정부가 집권 2기를 맞아 새롭게 선보일 한반도 정책은 우리의 앞날을 좌우할 중차대한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일본은 패전국의 비참한 위상에서 벗어나 세계 2위의 경제력과 미ㆍ일 동맹을 양대 축으로 삼아 점차 발언권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한 발 나아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까지 넘보고 있으며 아시아 전역에 대한 과감한 지원공세를 펼치며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말 발표된 일본 정부의 ‘신방위계획대강’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중국과 북한을 사실상 잠정적국으로 삼고 미국과의 군사동맹 강화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군사대국을 지향하겠다는 얘기다.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나라는 중국이다. 19세기 중일전쟁에 패해 한반도에서 물러났던 중국은 아시아 맹주로서의 옛 지위를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외교문제로 비화됐던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단적인 예다. 중국은 행여 발생할 한반도 통일에 대비하고자 북한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고 시도하는 등 잇속 챙기기에 분주하다. 바야흐로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첨예한 외교각축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가 21세기 역사의 주인공으로 부상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한 정세인식 아래 만반의 대비를 갖춰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반도가 오늘 당면하고 있는 21세기의 국난을 슬기롭게 풀어 나가자면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고 이를 오늘의 거울로 되살려야 한다. 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은 “올해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자신감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서 “위기?지나치게 강조해 오히려 위기를 부르는 자기실현적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또 역량있는 정치세력이 과거의 도식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국민을 통합하고 미래 경쟁력을 찾아나가는 자세도 절실하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역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물론 이를 통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틀로서 발전시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물론 이 같은 조정의 역할은 상당부분 정치권과 정부에 달려 있다. 정부가 올해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국민들은 제대로 지켜질지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히 높다. 정 의원은 “정치권이 흔들리고 갈등조정능력이 없으면 국민들이 불안하고 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며 “국민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던 여야 정치권이 올해 말과 행동에서 신뢰를 되찾기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1905년과 2005년’. 우리 앞에는 지금 냉철한 현실인식과 정확한 국제감각으로 한반도를 동북아 중심국가로 우뚝 세워야 할 역사적 과제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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