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주연 역할하기


'처음처럼'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소주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왠지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동시에 살면서 겪는 어려움을 치유하는 마법 같은 힘이 느껴진다. 연애 전선에 문제가 생기고 결혼생활에 권태기가 찾아오거나 일을 하다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처음 기억을 떠올리며 초심으로 돌아가 문제를 다시 살펴보고 해법을 찾으면 의외로 손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따지고 보면 매 순간이 언제나 처음이겠지만 인생을 살면서 정말 의미 있는 처음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 입학, 첫 만남, 첫 직장, 첫 성공 등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높은 파고를 헤쳐나가는 큰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국제통계 분야서 리더

'처음'에는 언제나 알싸한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법이다. 필자는 올해 통계청장으로 부임하면서 많은 처음을 만들어가고 있다. 첫 공직생활, 통계 가족들과의 첫 만남, 첫 대통령 업무보고 등 역시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한 순간이다. 물론 두려움과 긴장보다는 설렘과 뿌듯한 마음이 더 커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최근에는 또 다른 처음을 해외에서 만들고 돌아왔다. 지난 12~13일 제네바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위원회 회의에 한국 대표이자 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해 국제통계사회를 이끌어가는 많은 대표 통계인들과 깊이 있는 논의와 교감을 한 것이다.


유용하고 정확한 통계 생산을 위해서는 기준 설정 등 국제 공조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더 필수적이다. OECD 통계위원회는 유엔 통계위원회와 더불어 선진국의 통계청장들과 국제기구 통계부서장들이 함께 모여 통계 부문에서 국제 협력을 선도하는 전문기구다. 올해 회의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OECD 각국의 성장 부진 장기화로 인해 경쟁력 회복을 위한 정책적 필요를 반영한 '생산성 및 경쟁력 측정'과 더불어 사회자본의 측정, 환경경제계정 데이터베이스 구축, 국민계정을 이용한 가구 부문의 경제적 불평등 측정 방법 등을 논의했는데 이들 주제는 앞으로도 OECD 통계위원회의 핵심 어젠다로 지속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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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계사회라는 무대에 첫 데뷔하는 만큼 사전준비를 단단히 하면서도 '조연' 정도의 위상과 역할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회의에 참석해보니 이미 국제 통계 사회에서 한국은 '주연'이었다. 회의석상에서 많은 선진국들이 OECD 통계위원회의 부의장국인 한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한 고도화된 통계정보 시스템, 빅데이터 활용 등 한국 통계청의 경험을 경청하는 진지한 자세들을 확인하니 '대한민국 통계청장(Commissioner of KOSTAT)'이라는 명찰과 명패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 결과 많은 국제기구와 개별 국가로부터 국제회의 공동개최와 사례 발표를 위한 회의 참여를 제안받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해외에서 우리나라와 통계청의 높아진 위상을 직접 확인하니 그동안 우리 정부와 전임 통계청장들, 모든 통계 가족들이 쏟았던 열정과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2009년에 원조 선진국 클럽인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함으로써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변신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국가이다. 앞선 선진국이 원조를 통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고 함께 시장을 확대해 윈윈한 것처럼 우리도 높아진 위상에 맞게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원조사업을 진행하고 해외 진출도 확대해야 한다. 통계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어젠다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굴을 처음 먹은 사람은 가장 용감한 사람이다.' 학창시절에 영어공부를 하면서 배운 표현이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가 한 말이라고 한다. 통계 가족과 함께 통계청의 역사에 남을 멋진 처음을 많이 만들기 위해 용기를 내 끊임없이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계청 직원뿐만 아니라 380여개에 달하는 국가통계작성기관 관련자 등 모든 통계 가족들에게도 간접적으로나마 국제 통계 분야에서 주인공이 돼본 필자의 감흥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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