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귀찮다고 비리·부조리 눈감지 마세요"

비리고발 앱 '가만히 있으라… 고?' 개발 이영환 교수

사회 부조리·비리 등 제보하면 현장확인 통해 관계 당국에 고발

"우리 주변부터 스스로 바꿔야" 시민참여형 플랫폼 활성화 강조


보통 시민들은 사회 부조리나 비리 현장을 목격하고도 그냥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귀찮거나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만약 손쉽게 올린 비리제보를 누군가 대신 익명으로 세상에 알려준다면 어떨까. 한 대학 교수가 그 일을 자청하며 비리고발 앱(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주인공은 이영환(56·사진) 건국대 국제학부 교수.

그는 학과 학생들과 함께 지난 4개월 동안 연구한 앱 '가만히 있으라…고?'를 이달 초부터 앱스토어 구글플레이에 올려놓고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주변부터 우리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앱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앱 '가만히··'는 시민들이 알리고 싶은 사회 부조리, 비리 내용의 글·사진·동영상 등을 앱에 올리면 데이터 관리자인 이 교수가 일일이 검토해 제보자 이름을 제외한 내용을 앱에 공개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현장확인을 통해 비리·부패가 인정되면 제보자를 대신해 관계 당국에 고발도 한다. 현장 확인이 안 된 제보는 '미확인' 표시가 붙는다.

이 교수는 "제보가 쌓여 데이터베이스화되면 시민들이 부조리 현장의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방식"이라며 "제보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같은 사안에 대해 여러 제보가 쌓인다면 비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고 검증을 통해 사실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이 교수에게 시민들이 참여하는 고발·감시 도구의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한 계기가 됐다. 인도에서 사회에 만연된 뇌물문제를 폭로하는 사이트 'I Paid A Bribe.com'이나 2007년 케냐 대통령선거 당시 폭력문제를 고발하면서 시작된 '우샤히디(스와힐리어로 증언)' 등 전세계적으로 유사 사이트들이 생기고 있는 시민참여형 플랫폼들이 우리 사회에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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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부의 신문고 제도는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고 국민들은 귀찮고 불이익이 걱정되는 일은 피하려고만 한다"며 "구조적인 부조리·부패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세월호 같은 참사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시민참여형 앱 개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이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폭력 없는 우리 학교'나 공기업 정상화와 관련된 '공기업 데이터' 등을 내놨다. 하지만 '폭력 없는 우리 학교'는 다운로드가 수백건에 그쳤다.

그는 "학생과 시민들의 참여가 없어 가슴이 아팠다"며 " '가만히 있으라'고만 외친 세월호의 안내방송처럼 우리 사회는 가만히 있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만히' 앱의 디자인은 태극 문양의 종이 가라앉는 배 위에 걸려 있는 모습이다. 침몰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경종'을 표현했다.

이 교수는 1990년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현지에서 텔레콤 회사를 차려 당시 회사가치가 500만달러에 이를 정도로 성공한 정보기술(IT) 벤처인이었다. 하지만 IT 버블 붕괴를 견디지 못해 사업을 접고 2007년 귀국 후 강단에 섰다. 그는 "무작정 돈을 좇다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사회와 공익을 생각하게 됐다"며 "탐욕을 버려야만 우리 사회가 바뀐다는 점을 깨달은 것도 그때"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시민들이 사회개혁에 동참하는 참여민주주의 사회"라며 "여러 사람이 정보를 함께 만들고 공유하는 집단지성·집단지능이 이 같은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시민운동은 군중의 힘이 아닌 집단지성을 통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며 "이번 고발 앱에 많은 시민들이 동참해줬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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