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建榮(아주대 교수)봄이다. 옷자락을 싸고 도는 바람은 아직 차지만 겨울내내 텅 비었던 학교 교정에는 수강신청을 하는 젊은이들의 활기가 가득하다. 우리나라의 겨울방학은 유난히 길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조금 짧지만 대학은 12월 중순부터 2월말까지 두달반 가량이나 된다.
내 기억 속의 어린 시절 겨울방학도 무척이나 길었다. 그동안 따스한 아랫목에서 딩굴며 긴 동면의 시절을 보냈다. 확실히 요즘보다는 더 추웠던 것 같다. 동네밖으로 나가면 칼바람이 매섭고, 자고 일어나면 자릿기의 물이 얼어있기 십상이었다. 추위 때문에 겨울방학이 길다고 했다. 하기야 난방비도 충당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피난시절 내가 다닌 부산의 소위 피난학교는 천막이었다. 여기서 겨울에 정상적인 수업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봄이 되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학교에 가면 겨울철 난방은 주로 자갈탄 난로였다. 여기에 학생들이 도시락을 쌓아놓는다. 밑에 놓은 도시락은 누른 밥이 된다. 반찬이라고는 흔한 김치가 주종이었으니 수업시간에 김치볶는 냄새가 풍기게 마련이다. 그래도 점심시간이면 난로가에 쪼그리고 모여서 기분좋게 도시락을 먹었다.
지금도 지방대학에는 겨울철에 난방이 안되는 곳이 많다. 연구도 긴 겨울잠에 빠진다. 그렇지만 대개는 긴 겨울방학을 보내는 학생들이 답답하다. 겨울이니까 옥외스포츠나 여행 같은 기회가 적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다. 부모들도 같이 휴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연말연초는 모든 직장이 바쁘다. 오히려 맞벌이부부들은 어린 아이들을 집에 두고 출근해야하는 부담이 된다. 선진국에서 학교는 탁아소의 역할도 하고 있으며, 아이들만 집에 두고 나가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니 긴 겨울방학이 거추장스러울 수 밖에 없다. 서울의 웬만한 학교에는 에어콘 박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판인데, 난방비를 걱정할 때는 아니지 않은가?
학제를 바꾸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는 일본식 학제를 쓰고 있을 것이다. 겨울철은 일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기 좋은 시간이다. 이 기간을 젊은이들이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칼 힐티는 ‘지나치게 많은 휴식은 오히려 아주 적은 휴식처럼 우리를 피로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긴 겨울방학동안 무료하고 피곤하다.
우리의 휴가는 여름 한철에 몰려 있다. 이때 전국이 법석이다. 학기중에, 가령 봄과 가을에 적절히 휴가(브레이크)를 분산하여 재충전하도록 하면 더욱 좋다. 겨울방학도 짧은 브레이크면 된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길어지면 당연히 학년의 시작은 가을로 가는 것이 옳다.